루비
[The Psychology Times=루비 ]
사람은 스스로를 무가치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면 깊은 절망에 빠지거나 자신의 우울을 감추려고 타인을 공격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중과 가치 부여는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교사로 지내는 수년 동안 나는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갔다. 아이들과 정말 호흡이 잘 맞아 행복한 한 해를 보냈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아 도망치듯 포기한 적도 있다. 교사도 학생도 사람이라 어떻게 관계를 잘 만들어 가는가가 중요한데 그 성패가 학급 분위기를 좌우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나에게 가장 기뻤던 순간은 바로 아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았을 때였다. 아이들에게 따듯한 감사의 말을 전해 들으면 내 존재가 온 우주로부터 인정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교사에게는 최고의 명약이 아닐까 싶다.
2016년, 지방 중소도시 30 학급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맡았을 때였다. 우리 반은 28명으로 1학년 특유의 귀여움과 재기 발랄함으로 다사다난하지만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린 꼬마 녀석들과 어버이날 카드를 만든다고 글루건을 사용하다가 손이 데어서 학부모님이 매우 화난 일, 봄 교과를 수업하며 교내 꽃나무를 모두 둘러본 일, 1학기 활동을 마치며 다 함께 물총놀이를 하다가 옷이 흠뻑 젖은 일 등 많은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오다가 우리 반 남자아이가 내게 해 준 말이었다.
"선생님은 제 꿈을 이뤄주셨어요."
"응?"
"저는 코끼리 보는 게 꿈이었거든요. 오늘 동물원에서 커다란 코끼리를 직접 보아서 너무나 기뻤어요."
동물원의 코끼리
천진난만한 그 아이의 이야기에 내 마음은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체험학습은 학년 부장 선생님이 추진하시고 나는 아이들을 인솔하여 데려간 것이 전부이지만 이렇게 감사하고 기뻐해 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뿌듯하다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단순한 버킷리스트든지 직업적인 진로희망이든지 간에 진심으로 내가 만난 제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학창 시절 제대로 된 진로교육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쩌다 교실 환경에 게시할 종이에 장래희망을 즉흥적으로 그려서 써낸 것이 전부였다. 내 진로에 대해 깊이 탐구해보지 못하고 다양한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는 더욱더 잘해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미디어에서는 4차 산업 혁명 시대 도래에 대해서 연신 떠들어대지만 정작 주변을 살펴보면 여전히 대기업,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에 목숨 걸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참 많다. 왜 모두가 한 곳을 향해 끝없는 경쟁을 해야 하는 걸까?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과 숙고의 시간들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면 레드오션에서 경쟁하지 않아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텐데 말이다. 꼭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디자인에 재능이 있는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음악성을 타고난 아이 등 자신의 강점을 알고 계발하는 데 주력하면 엉뚱한 곳에서 에너지 낭비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지난 스승의 날에 2013년에 맡았던 제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자신에게는 최고로 운이 좋은 일이었다고. 워낙 예쁘고 착실한 학생이었기에 그 진심이 더욱 깊이 전해졌고 부끄러운 마음에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에 맡았던 제자에게서 받은 편지에는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이 제일 즐거웠어요'라는 감사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편지를 읽어 내리는 순간, 내 마음에는 해바라기가 활짝 꽃 핀 것 같았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에 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담금질의 시간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전국에 계신 선생님들 모두 다들 누구보다 열심히 하시고 최고로 훌륭하다는 것 너무나 잘 아는 입장으로서 주변 선생님들과 함께 더욱더 멋진 선생님이 되기 위해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국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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