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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병원에 와서 적응이 안됐던 게 많지만 그중 아직도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건 의료진이 가지고 있는 예민함이다. 좋게 말하면 세심하고 꼼꼼하다고 표현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참 강박적이고 사람 숨 막히게 하는 특성을 지닌 이 예민함은 흔히 옵쎄(강박장애, obsessive-compulsive disorder)하다고 표현한다.


옵쎄함은 타고난 사람도 있겠으나 의료계열에 종사하다보면 훈련되는 것 같아 보인다. 학과 과정부터가 말도 안 되는 공부량에 한 문제를 틀리면 등수가 저만치 밀려버리는 경쟁적인 현실에서 한 문제라도 더 맞혀야 한다는 압박이 강박적 행동과 사고를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실제로 현장에서 환자를 볼 때 중요한 단서 하나를 놓칠 경우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사람을 점점 짓누르는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그 옵쎄함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똑같은 일을 해도 사람마다 우선순위를 세워서 처리하는 과정 중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자신의 방식과 다르다고 틀렸다며 지적하는 경우나, 자신의 강박적인 성향을 견디지 못해 타인에게 짜증을 내고 닦달하는 경우에 관계가 흔들리고 같이 일을 할 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해결방법은 대화하고 맞춰가려는 시도,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해보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환자를 살리는 데 효율적이고 신속하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수직적으로 이루어지는 병원 현장에서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부서별, 직군별 간담회를 하며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고 공감하며 하나씩 고쳐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옵쎄함은 환자를 볼 때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흉부외과 중환자실에서는 그렇게 소변에 집착을 한다. 왜냐하면 시간당 소변량은 심장이 잘 뛰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간호학과를 다니며 4년간 공부하는 동안 매 시간 다른 사람의 소변이 잘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지켜보면서 소변이 안 나오면 애타고 있을 줄 몰랐다. 소변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었다니. 오늘 하루도 눈을 떠서 화장실을 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는 노련한 간호사 선생님이 환자의 상태를 면밀하게 파악해서 바로 조치한 후 상태가 악화되는 걸 막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더 환자 곁에 다가가서 대화를 해보고 또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경청하고 상태를 파악한 후 적절한 처치를 한 의사 선생님을 통해 회복되는 환자도 정말 많이 봤다. 그들의 공통점은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데 있어 지독하게도 옵쎄했다는 점이다. 검사 수치, 생체 징후, 정서적 상태, 과거력, 숨 쉬는 양상, 영양 상태 등 어느 것 하나 등한시하지 않았다.


이렇듯 예민함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도 일하다 보니 나만의 예민함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예민함의 목적에 맞게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고 환자를 돌보는 데 사용하고 싶다. 이러다가 너무 옵쎄한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일단 뒤로 미뤄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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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9-02 08: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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