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금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사는 게 왜 어려울까.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 입학하거나 취업하려면 입사하려는 학교나 회사가 원하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 업무에 따라 자격 요건이 외국어 능통이라든지, 경영학 전공이라든지 구체적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자격 요건을 위해 구체적 항목을 열거할 수 없다. 개인이 처한 상황도 다르고, 그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 달라서 하나로 수렴할 수 없다.
‘힘들 때는 고기 앞으로’처럼 정해진 매뉴얼이 있다면 사는 게 덜 어렵지 않을까. ‘힘들 때는 고기 앞으로’는 우스갯소리지만 지혜가 녹아있다. 지글지글 불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보면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익어가는 고깃점에 하트로 충만한 시선을 보내면서, 언제 젓가락을 내밀지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알맞게 익은 고깃점이 입안으로 들어올 상상을 한다. 고작 고기 몇 점에 근심이 안드로메다로 사라진다. 괴로운 순간에도 고기 앞에서 침 분비를 활발히 하면서 ‘나는 동물인가. 밥맛이 없어야 할 때에 먹을 것 앞에 앉아 미소를 짓다니...’ 맛있는 걸 먹은 후 실타래처럼 엉킨 일이 대수롭지 않게 보이면서 하나하나 풀면 되지, 하고 배짱이 두둑해지곤 한다.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집 ≪대성당≫에 실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평탄하게 살아온 부부가 여덟 살 난 아들을 교통사고로 떠나보내는 이야기이다. 부부는 갑자기 아들을 잃는다. 아들을 잃어버린 절망이 너무 커서 그들은 슬픔조차 실감 못한다. 그 순간 그들은 현실에서 비껴나있고 배고픈지도 몰라 밥도 안 먹는다. 그러다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빵집에 들어서면서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그들은 마법이 풀린 것처럼 허기를 느낀다. 부부는 갓 구운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면서 비로소 아들의 죽음을 비로소 인식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소중한 아들을 갑자기 잃은 부모가 갖게 된 마음의 구멍이 어떻게 케이크 한 조각으로 채울 수 있겠는가. 마음에 난 커다랗고 깊은 구멍이 사라질 리 없다. 하지만 잠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바라보면, 툭툭 털고 일어날 힘을 얻는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바로 툭툭 털고 일어나서 계속 나아갈 힘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모든 개인의 이야기는 모두 소중하고 특별하다. 특정한 상황에 놓여 본 사람만이 갖는 감정이 있다. 감정은 미묘해서 말로 하는 순간 흐트러지고 더 꼬일 수 있다. 이럴 때 말하는 대신 영화 한 편에 담긴 허구의 인물이 겪는 이야기를 엿보면 엉킨 감정을 정리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머리 아플 때, 심란할 때, 힘이 빠졌을 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치맥을 앞에 두고 TV 리모컨을 누르자. 두 시간 동안 펼쳐지는 영화 속 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게 빠져보자. 고기 한 점이나 케이크 한 조각처럼 영화 한 편으로 나만의 해결책이 번뜩이거나 생각지도 못한 다독임을 찾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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