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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신선경 ]



당신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들려오는 소문으로 사람을 평가해본 적이 있나요? 
또는 평가 당해 본 적이 있나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선입견으로 재단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역, 니은도 잘 알지 못하는 유치원생들도 잘 아는 사실이죠.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들려오는 정확하지 않은 소문으로, 그 사람에 대해 가진 나의 편견으로 진해진 색안경을 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소문에 예민하고, 서로를 가장 신경 쓰는 청소년 시기에는 이런 색안경이 더욱 진해지곤 하는데요. 특정 한 사람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색안경을 끼는 것을 사회학에서는 '낙인(스티그마: stigma)'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즉 달궈진 도장으로 인을 새기는 것과 같이 특정 사람에 대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너는 어떠한 사람이다'라고 사회적으로 인을 새긴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낙인을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데요. 오늘 이 글에서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나용은 이야기 



용은이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외모와 또래에 비해 통통한 얼굴 소심한 성격을 가진 자신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찢어지고 올라간 눈에 큰 코를 가진 자신을 친구들이 왕코 고양이라고 불렀는데, 속상한 마음에 이불을 적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였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는 이전과 달라지기 위해 유튜브로 화장도 배워보고 다이어트도 했지만, 친구들은 소심한 용은이의 성격을 답답하게 여겼고 은근슬쩍 용은이를 따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떡볶이를 먹으러 가거나, 놀이공원에 놀러 갈 때 용은이에게는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거나, 자기들 만의 비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용은이는 매일 매일 지옥같은 하루를 버티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 큰 결심을 했습니다. 자신의 콤플렉스인 외모를 바꾸기 위해 성형 수술을 하고 수술 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진학한 고등학교에서는 예뻐진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행동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아니, 사귄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용은이가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를 듣기 전 까지는 말입니다. 


"용은이 걔 너무 성형한 티가 많이 나지 않아?" 
"성형은 자존감 낮은 애들이 하는 거잖아. 매번 방학 지나면 얼굴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지 않아? 성형중독 인가봐. 이젠 징그러" 
"중학교 때는 친구들 한테 돈도 뺏고, 선생님한테 대들기도 했대. 여기는 신분세탁 하려고 온거라던데?"


평소 자신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반 친구들, 심지어는 옆 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용은이의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믿었던 친구들에 대한 배신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나쁘게 말한 것에 대한 억울함으로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던 용은이는 자신을 비웃었던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상처를 줄 수 있을 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쁜 용은이를 눈 여겨 보던 소위 '일진' 무리는 용인이가 자신들과 함께 지내기를 권유했고, 상실감과 분노에 가득찬 용은이는 자신의 뒷담화 그대로 되어주자고 다짐하며 그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용은이의 일탈이 시작되었습니다. 


용은이는 그 이후 아무렇지 않게 일진 무리와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뒷담화를 하고 거짓된 소문까지 퍼트리며 자신을 모욕했던 친구들에게 욕을 하거나 돈을 뺏고, 심지어는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손찌검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용은이는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고 심지어는 부모님에게 까지 못된 가해자로 찍혀버렸고, 같이 나쁜 짓을 하는 친구들이 아니면 용은이를 환대해주는 곳을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결국 소년원에 가기도 하면서, 스스로도 자신은 나쁜 짓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낙인이론과 낙인이 청소년에게 주는 문제 



낙인이론에 따르면 낙인은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이렇게 고립된 개인은 일종의 안식처로서 비행청소년들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즉 가정법원에서의 형사처분과 같은 공식적 낙인 뿐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 도는 불분명한 소문으로 가지게 된 날라리라는 이미지의 비공식적 낙인은 비행친구와 교제하도록 하는 매개과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낙인은 쉽게 말해 사람의 '개과천선'을 막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입니다. 종이에 잉크로 찍힌 낙인이 쉽게 제거되지 않듯이, 사람들에게 한 번 찍힌 낙인은 쉽게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리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그 사람의 변화된 성과를 무시하기 때문에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를 꺾어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낙인은 특히나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데요. 앞으로 교화하여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야 할 기간이 비교적 긴 청소년들의 경우 낙인으로 인해 겪게 될 피해의 기간이 길 뿐만 아니라, 미성숙하기 때문에 더 크게 상처 주고 더 크게 상처 받기 때문에 그 회복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낙인은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이러한 낙인은 개인의 문제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이 어찌하지 못하는 사회나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겪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잘못이라고 치부하여 개인에게 고통의 감내를 요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난'이라는 것은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가난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새 가방보다 다 떨어진 가방, 새 신상 옷과 신발 대신 물려 받은 옷과 시장에서 사온 짝퉁 신발을 신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가난하다는 이유' 만으로 '거지'라고 낙인이 찍혀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사는 집과 가지고 있는 차로 계급을 나누고, 자신들의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를 배척했던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봤던 용은이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외모, 그리고 타고난 성격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고,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성형도 하고 성격도 고치며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마저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비쳐지며 비행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물론 '더 노력했어야지'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좀 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외모나 친구 말고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으면 됬을텐데'라며 아쉽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용은이를 보고 싶습니다. '내가, 우리가 좀 더 용은이를 이해해 줬다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말입니다. 모든 다툼에는 참여한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용은이는 누군가에게 가해자였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낙인의 피해자였습니다. 용은이가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것 없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을 온전히 용은이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낙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앞으로 낙인을 대하는 자세 



살갗에 박힌 파편을 빼내기 위해서는 살을 가르고 아무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나을 수 있듯이, 한 번 박힌 부정적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타인들의 차가운 시선으로 찢어지는 마음을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견뎌내야만 합니다. 물론 그 과정을 견뎌내고 난 뒤에도 여전히 흉터가 남겠죠. 그 흉터가 다시 찢어지게 될지, 아니면 흐릿하게 남게 될지는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다시 말해 사회가 그 사람을 얼마나 보듬어 주고, 손을 내밀어 주는 지에 따라 바뀌게 되겠죠. 


물론 그 과정을 겪는 우리 역시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도 함께 낙인이 찍혀 도태될 수도 있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돌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뛰어내리려는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는 없겠지만, 멀리 떨어져 그들에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는 건넬 수 있습니다. 그 말을 건네는 사람이 한 사람, 두 사람, 백 사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되면, 우리는 조금 더 실수를 엇나감을 처벌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함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형벌을 강화하고, 사회의 문제를 형벌로 다루려고 하는 태도는 봉건주의 사회의 태도라고 합니다. 우리는 근대 이후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민주시민의 한 명으로서,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은 처벌하라고 주장하기 이전에 내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는 없는 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시민이 되길 바랍니다. 




참고 

김중곤. (2022). 비공식낙인이 비행친구와의 교제를 통해 비행에 미치는 영향: 낙인이론의 부분적 검증. 청소년학연구, 29(3), 16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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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9-22 07: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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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PT_mangosteen2022-10-14 15:06:37

    용은이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 흔히 일어날 수 있기에 더욱 공감 되고 읽는 내내 마음이 쓰리네요. 청소년기의 자아정체감이 잘 확립될 수 있도록 어른들의 관심과 노력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반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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