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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이효림 ]



 인간은 정말 합리적일까? 



‘경제학’은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경제학 속 모든 인간은 자신의 기호가 명확하며 그 기호를 토대로 최적의 효용을 제공하는 대안을 선택한다. 또한 경제학 속 인간은 자신의 물질적 이득을 최우선으로 한다. 즉, 하나의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인간은 모든 상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지식을 토대로 모든 상품 조합의 효용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신’과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인간이 정말로 그러한가?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것과 달리 인간의 기호는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A의 어머니가 A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고, 이에 A는 망설임 없이 햄버거라고 답했다. 그러자 A의 어머니는 일주일 내내 A에게 식사로 햄버거를 제공하였고 일주일 뒤, 다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A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지금은 햄버거만 아니면 다 좋을 것 같아요.” 

 

이런 가상의 상황이 아닌 주변을 둘러봐도 인간은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성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리는 길을 가다 우연히 70% 세일 공지를 보고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기도 하며, 자신에게 아무런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는 무료 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렇듯 현실과 다르게 가정된 경제적 인간에 대해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경제적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나타내는 모델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인간의 합리성에 의심을 품어라 : 제한된 합리성과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행동경제학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인 허버트 사이먼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볼까 한다. 허버트 사이먼은 미국의 사회과학자이자 경제학자로, 조직 내의 의사결정 모델 이론을 확립해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특히 그의 연구 중에서도 ‘제한된 합리성’의 개념은 경제학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이먼은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했던 인간의 합리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인간의 행동은 ‘최적’의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이 되는 ‘만족’ 상태에서 이뤄진다며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된 합리성 개념과 함께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꽃피게 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행동경제학이 주류경제학의 모든 학문적 연구를 비판하고 새롭게 대체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행동경제학은 기존 경제학의 원리에 심리학적 이론을 도입해 주류경제학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경제학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학문적 목적을 지닌다.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을 근거로 발전한 행동경제학의 사례를 분석해보며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1991년 레이먼드 하트먼(Raymond Hartman)은 캘리포니아 전력회사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회실험을 진행했다. 하트먼은 전력 소비자를 서비스 신뢰도는 높지만 비싼 요금을 내는 소비자들과 신뢰도는 낮지만 싼 요금을 내는 소비자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각 사람에게 신뢰성의 정도와 요금을 조정한 6가지의 전력 공급 플랜을 제시하였다. 놀랍게도 두 그룹 모두 절반 이상의 소비자가 현재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전력 플랜과 같은 것을 선택했다. 

 

 

주류경제학에 따르면 이러한 실험 결과는 불가능하다. 모든 순간에 합리적인 인간은 신뢰도와 전력 요금에 대한 자신의 효용을 계산해 최적의 플랜을 선택해야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지금의 현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회피하는 경향을 가진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 부른다.

 

현상 유지 편향은 특히나 기업의 경영 및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되는데, 이 것을 ‘CRM 마케팅(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Marketing)’이라 부른다. 이는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가질 수 있도록 초기에는 기업 홍보에 힘을 쓰고 이후에는 확보한 고객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는데 초점을 두는 기업의 경영 전략을 의미한다. 

 

위의 현상 유지 편향 예시처럼,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심리적 경향성을 근거로 주류경제학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과 행동에 대해 분석한다.

 



 행동경제학의 미래



물론 행동경제학도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체계적으로 이론화 되어 정립된 주류경제학에 비하면, 행동경제학은 일관성이 부족한 ‘정리되지 않은’ 이론이다. 또한 행동경제학에서 실시하는 사회실험은 과학실험과 달리 완벽하게 제약된 공간에서 진행될 수 없기에 결과의 타당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합리성 개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현상들을 증명해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보여준다. 경제학을 보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접근해 나가는 행동경제학자들의 연구는 비합리적인 인간의 행동이나 선택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하며, 나아가 이를 고려해 중요한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행동을 연구하며 실질적인 인간의 경제적 행위들을 설명하는 행동경제학 연구는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다. 행동경제학 연구가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넘어 인간의 삶까지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도모노 노리오, 이병희 옮김, 2007, 『행동경제학 : 경제를 움직이는 인간 심리의 모든 것』, 지형, 37-51, 

Samuelson, W. & R. J. Zeckhauser. (1988). Status quo bias in decision making. Journal of Risk and Uncertainty, 1, pp. 7–59.

크리스토퍼 시, 양성희 옮김, 2011, 『결정적 순간에 써먹는 선택의 기술』, 북돋음,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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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9-26 08: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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