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웅
[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사람에 따라 수술 후 회복되는 속도는 다르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있는 기간이 짧을 수도, 길어질 수도 있다. 대부분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병동으로 이동하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환자는 물론 보호자 분들도 어려움에 직면한다. 면회 시간이라도 자유로우면 좋으련만, 병원마다 면회시간은 정해져 있어서 면회시간에 맞춰 스케줄을 맞춰야 하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다는 사실만으로도 버겁고 힘든 상황인데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니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매일 저녁 면회시간마다 환자분을 보러 오는 따님을 면회시간에 또 만나게 되었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얼굴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아팠다.
- 오늘도 오셨네요. 자주 면회 오시는 게 힘드시진 않으세요?
- 안 그래도 매일 1-2시간 일찍 나와야 하니까 직장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눈치 보이기도 해요.
- 상황이 쉽지가 않네요.
- 네. 그래도 엄마가 조금씩 좋아지시는 게 보이니까 느긋하게 기다려봐야죠.
따님은 느긋하게라는 표현을 했지만, 결코 느긋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이질감이 느껴졌다. 엄마가 아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고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직장에서 일찍 나와 20분이라는 면회시간을 지키려고 마음 졸이며 병원에 왔을 그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어떤 심정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계실까.
엄마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하고,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식사를 마친 후 정성스레 입 안을 양치해드리는 딸의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따님에게 있어서 엄마와 교감할 수 있는 20분이라는 면회시간은 고단한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 시시콜콜한 얘기를 할 수 있는 하루가 주어졌다는 사실, 속도는 조금 더디지만 엄마가 회복되어가는 모습에 따님은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 다 되어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중환자실을 떠나는 따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간절한 환자 곁에 있는 시간을 나는 내 마음을 다해서 환자를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겁지만, 한번 도전해볼 만한 책임감이 느껴졌고 내 가족처럼 환자분들을 대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어느새 습관처럼 변해버린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이 다시 새롭게 보였다. 시간이 흘러 내 모습을 바라봤을 때 나는 내 가족처럼 환자분들을 대하는 간호사가 되어 있을까. 그렇게 되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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