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금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대학 4년 동안 붙어 다녔던 단짝이 있었다. 졸업반이 되자 친구는 만나면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졸업 후 진로를 고민했다. 이력서를 내는 곳마다 떨어졌고 하늘 아래 혼자인 것 같았다. 전공이 달라 수업 시간 외에는 뭐든 같이 했던 친구와 점점 멀어졌다. 우리는 가끔 만나게 되었고,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섰다. 빨강머리 앤이 다이애나와 평생의 우정을 맹세했지만 졸업 후 다른 길을 갔듯이. 친구는 4년 간 내 일기장의 주인공이었는데 그녀의 결혼으로 나는 커다란 상실감을 경험했다. 친구에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 몫의 상실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상실감을 쏟아냈다. 순도 높은 우정을 지키고 싶었던 나는 낭만주의자였다.
<프란스시 하>는 일과 순도 높은 우정을 지키려고 애쓰는 27세 여성의 미묘한 감정을 다룬다. 프란시스는 남자 친구가 "안 생기는 undatable" 캐릭터로 정의된다. 극 중에서 부부 관계를 정의하는 말이 나온다. 하우스 메이트인 남자가 "우리는 부부 같아. 섹스는 안 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 레즈비언 커플 같기도 하고." 프란시는 남자 친구보다 동성 친구와의 우정과 일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프란시스는 무용수로 살고 싶다. 그녀는 남자 친구보다 단짝인 소피를 더 좋아한다. 소피와 살기 위해 남자 친구가 동거를 제안해도 거절하고, 남자 친구와 헤어진다. 프란시스는 소피를 ‘다른 머리색을 가진 같은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이 생각은 프란시스의 생각일 뿐이다. 소피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약속한다. 당연하지만 소피는 프란시스에게 소원해진다. 이제 프란시스는 소피가 남자 친구와 약혼을 하고, 도쿄에서 살 거라는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듣는다.
프란시스는 이성애보다는 자신과 “쌍둥이”라고 믿는 친구와의 우정에 더 가치를 둔다. 과연 우정을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 사랑과 우정의 본질은 같다. 둘 다 혼자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우정의 속성은 같다. 상대의 마음이 변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프란시스는 친구 소피가 남자 친구와 약혼을 해서 도쿄로 떠날 거란 말을 듣고 히스테리를 부린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인생의 중대사에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와 가치관이 다르면 결국 어느 시점에서 다른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입 밖으로 내기에는 미묘한 감정인 섭섭함이 가득하다. 프란시스와 소피 사이에 긴 현수교가 생긴 것 같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앞으로 가고 싶지만 한 발 다음에 다음 발을 옮기기 여의치 않는 것처럼. 남겨진 건 오도가도 못 한 채 불어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혼자 맞고 있는 것 같은 프란시스.
소피가 주말에 파리에 있을 거라는 말을 전해 듣고 프란시스는 카드 값을 걱정하며 뉴욕에서 파리로 날아간다. 고작 1박 2일. 정작 파리에 오면 연락하라던 사람은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고 밤에 소피한테 송별 파티가 있다고 연락이 온다. 하지만 프란시스는 파리에 왔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고 못 간다고만 말한다. 자신이 저지른 뻘짓을 그 누구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심정이라니. 누군가 가볍게 내뱉은 말을 혼자 다큐로 받아들이고 삽질 했을 때, 이불 쓰고 하이킥하고 싶은 심정이다.
마음은 내 것일지라도 가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사실대로 말하면 간단한데 그 간단한 일이 어떤 때는 대단히 어려워서 고집을 부리곤 한다. 이성과 감정이 불협화음을 이룰 때, 감정이 번번이 승리한다.
프란시스가 원하는 무용수로서의 길은 요원해 보이고, 매달 내야하는 집세는 압박스럽기만 하다. 암울하기만 한데 볕은 찬란하다. 영화 포스터는 눈부신 햇살 속에서 프란시스 하가 생계를 위해 타협했을 때이다. 무용수가 아니라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잠시 나와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다. 곧 넘어질 것 같으면서도 간신히 균형을 잡는다. 머리칼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프란시스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달리거나 빠르게 걷는다. 여유 없는 생활을 몸으로 보여준다. 이십 대, 돌이켜보면 젊음 그 자체로 찬란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고 일도, 우정도, 사랑도 뜻대로 되지 않는 걸 배우는 시기였다. 이십 대에는 자존심이 팔팔해서 세상과 타협하느니 혼자 뭔가를 보여주겠어, 결의하는 때이다. 프란시스는 제안 받았던 무용단 사무직을 거절하고, 모교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면서도 곧 죽어도 모교가 좋아서 체험해 보는 거라고 허세를 부린다. 허세라도 없으면 마음이 누추해질 거니까.
어느 날 소피는 약혼자를 떠나 뉴욕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재회를 하고 소피는 남자 친구와 도쿄에 사는 게 싫다며 취해서 남자 친구에게 꼬장을 부린다. 프란시스가 기거한기숙사의 좁은 침대 위에 소피와 둘이 누워서 사랑한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는다. 친자매도 친구도 내 생각과 같을 순 없다. 다음날 소피는 자고 있는 프란시스에게 메모 한 장 남겨두고 약혼자의 삼촌(?) 장례식장으로 달려간다.
그래, 사람한테는 여러 가지 사랑이 필요하다. 우정도 필요하고, 싸우다가 화해하는 이성 간의 사랑도 필요하다. 주식으로 밥을 먹지만 때로는 빵도 필요하고 국수도 필요하듯이. 이렇게 생각하면 배려 없는 것 같은 소피의 행동이 이해된다. 오히려 프란시스가 갈망하는 우정은 순도가 높아서 세상에서 찾기 힘들다. 프란시스는 낭만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없는 것을 추구하는 이를 우리는 낭만주의자라고 부르니까. 프란시스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을 끝내고 현실과 타협하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온 힘을 다 해 마음을 주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어쩐지 씁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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