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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고 키우다 늘어진 뱃살을 발견했을 때 - 그녀 이름은 봉순이 영화 <경축! 우리 사랑>
  • 기사등록 2022-12-27 13: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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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나는 그냥 니가 좋아.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줌마’란 결혼한 여자를 평범하게 부르는 말이다. 근대 한국 사회에서 긍정과 부정이 함께 섞인 '억척스럽고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으로써 인식되기도 했다. 현재 아줌마, 엄마에 대한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인식된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고 헌신하는 여성상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판타지이다.


"여성이 남성처럼 자신의 성적 욕망을 남김없이 실현한다면? 감히 남성과 동등한 성적 자유를 누리고자 한 대가로 가부장제 질서를 교란시킨 불온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비난과 멸시를 받으며 사회에서 추방될 것이다. 여성의 성과 섹슈얼리티를 남성이 소유, 보호해야 할 무엇으로,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쥔 주체적인 여성은 바로 남성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홍재희 <<비혼 1세대의 탄생>>


 ‘봉순’이라는 이름의 하숙집 아줌마는 젊어서 남편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동네에서 노래방을 하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섹스하러 가면 노래방에 나가 카운터에 앉아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가계 경제에 보태기 위해 하숙생을 받아 밥을 차리는 하숙집 아줌마로 살아간다.      


임경선 작가는 소설 ≪나의 남자≫에서 여주인공 한지운의 입을 빌어 10년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한다. 결혼 생활 10년은 국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남편을 위해 10년간 끓인 국의 양이라고 한다. 주인공 한지운이 정신적 외도에 빠지는데 '밥 차려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주부들은 남이 차려준 밥이 제일 맛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다들 퇴원하기 싫어한다.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고 병원에서 시간 맞춰 나오는 세 끼 밥을 먹는 호강을 하는 곳이 병원이라니, 웃프다. 


아줌마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 안 먹어도 국을 끓이고 밥을 차리는 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확실하다. 하숙집 아줌마인 봉순 씨는 어릴 때부터 무뚝뚝하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세상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줌마는 이름이 봉순이라는 것도 잊었다. 어느 날 딸은 세탁소를 하는 하숙생과 눈이 맞아 결혼하겠다고 해서 심란하게 하더니, 직장을 구하자 달동네가 싫다고 메모 한 장 달랑 써 놓고 집을 나간다.  언제부터 봉순 씨는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았을까. 하숙집 아줌마, 밥상 차리는 아내가 되었을까.   


남편에게는 다른 여자가 있다. 자기중심적인 딸은 세탁소 청년과 결혼하겠다고 하더니 하루아침에 부모와 청년을 버리고 집을 나간다. 봉순 씨는 겉으로 별일 없이 살고, 이런 사건들이 자신에게서 웃음을 빼앗아 갔다는 걸 모른다. 봉순 씨는 딸에게 버림받은 세탁소 청년이 괴로워하는 걸 보다가 그와 하룻밤을 보낸다. 청년은 술에 취해 이성을 놓았을 때지만 봉순 씨는 아니다. 그날 밤, 봉순 씨는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출했다. 다 큰 딸이 있는 중년 아줌마가 서른 살 총각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한다. 봉순 씨는 청년만 보면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고, 청년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도시락을 싸면서 웃음을 되찾는다. 질끈 뒤로 묶었던 머리를 풀고, 무릎이 늘어진 츄리닝이 아니라 치마를 입는다.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자는 남편 곁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남편에게 폭탄 선언한다.  



"미안해, 여보.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딸도, 남편도, 세탁소 청년도 봉순 씨에게 임신한 아이를 지우라며 강요한다. 



"엄마가 뭐 이래."


   

딸은 필사적으로 엄마의 사랑에 반대하지만 아무도 봉순 씨를 말릴 수 없다. 봉순 씨는 세탁소 청년에게 고백한다. 


-나는 그냥 니가 좋아. 

-나한테 이 아이는 니가 준 보물이야. 살다가 딴 사람이 좋아지면 훌훌 가.      


봉순 씨가 원하는 것은 현재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까지 억눌러서 잊고 살았던 감정을 되찾고 싶을 뿐이다. 남편과 딸을 위해서 희생했던 봉순 씨는 자신에게 찾아온 ‘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이혼도 두렵지 않다. 밤에 문간방에 사는 세탁소 청년의 방으로 베개를 들고 찾아간다. 그녀는 오르가슴에 도달해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이 이제 부끄럽지 않다.      


남편은 자신이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은 사랑이고,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은 바람이라고 본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봉순 씨는 이제 남편의 자장 아래에서 벗어났다. 봉순 씨는 세탁소 청년과 대놓고 꽁냥꽁냥 한다. 청년은 동네 사람들에게 말한다.       


-제가 봉순 씨 좋아해요. 

-봉순이가 누구야?

-봉순이가 아줌마 이름입니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봉순 씨는 미쳤을지 모른다. 감정에 충실하기로 작정한 아줌마는 힘이 세다. 두려울 게 없다.  봉순 씨는 결국 청년의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그 아이를 위해 다시 헌신하는 삶을 살 것이다. 아이는 잊고 있던 이름을 찾았던 시절의 흔적이다. 봉순 씨는 아줌마, 엄마의 역할에 한정되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지만, 그녀가 겪었던 공허와 격정은 자신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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