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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중년의 비혼자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연애담을 끝내는 시절을 맞이한다. 물리적으로 연애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설령 연애담을 이야기해도 주변에 있는 기혼 친구들은 연애 세포가 죽어서 드라마처럼 극적인 감정이 지속되지 않으면 헤어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중년에 연애하는 것은 조금 외롭다.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양육의 고단함, ‘남의 편’인 남편에 대한 불만, 부부 사이에 달달함의 결핍 등이다. 비혼자가 보는 결혼 생활은 나와 다른 타인과 가족을 이루기로 약속했고, 그 약속에 대한 책임인 것처럼 보인다. 불꽃 같은 사랑의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고, '콩깍지'는 더이상 없다.         


사랑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찰나의 감정이 아닐까. 찰나의 열정이 사라지면 가족을 이룬 사람에 대한 익숙함과 편안함, 그리고 신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배우자와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가족을 이룬다. 따라서 배우자는 나를 가장 잘 알아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기대 탓에 실망이 찾아온다. 두 사람 사이에 케미는 드물고 관성으로 일상을 꾸린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편은 관심이 없다. 아내의 자아실현이나 커리어는 한 귀로 듣고 두 귀로 흘린다. 남편은 커리어에 올인한 후 남는 시간에 아이와 놀아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사회적 성공에 아내는 진심으로 기뻐한다. 남편의 사회적 성취를 보면서 아내는 그동안 억압했던 자신의 욕구와 포기했던 커리어를 떠올린다.       


사람이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 진심으로 공감하는 일이 가능할까?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결혼은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라고 말한다. 친구나 동료에게는 예의라는 걸 차린다. 그들과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애착 대상인 커플 사이에서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힘들다.      


느끼는 대로 말하고 감정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걸, ‘참는다’고 말하게 된다.  참아도 알아주지 않는 둔감한 남편. 결국 아내에게 임계점이 찾아온다. <결혼 이야기>는 커플이 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시작한다.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합의 이혼하기로 했다. 상대와 사랑에 빠졌던 때를 떠올리며 그 사람과 왜 결혼했는지, 상대의 장점을 적어보는 과제를 받는다. 두 사람은 각각의 인격체로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배우자로 함께 살면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상기한다. 하지만 니콜은 여덟 살짜리 아들을 키우면서 자신이 찰리에게만 맞춰서 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미래를 갈망한다. 찰리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니콜의 바람대로 이혼하기로 합의한다. 이혼이 흔해졌다고 하지만 이혼의 아픔까지 감기처럼 왔다가 흔적없이 사라지진 않는다.           


니콜과 찰리 사이에는 아들 헨리가 있다. 니콜은 양육권을 갖기 위해 이혼 소송을 한다. 두 사람은 이혼 법정에 가게 된다. 그들의 대리인인 변호사들은 지독히 끔찍하게 상대를 비난하는 말을 한다. 두 사람은 변호사들이 아내를, 남편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드는데 놀란다. 제삼자가 두 사람의 행동과 인격을 비난하는 말을 들으며, 두 사람이 간직한 추억마저도 하찮게 부서지는 걸 느낀다.      


한번 어긋난 남녀 관계는 문제점을 알아도 감정이 극에 달해서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 각자의 입장이 있어서 두 사람의 주장이 다 옳기 때문이다. 상대의 아픔에 귀를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서로의 주장은 마음만 더 상하게 할 뿐이다. 대리인의 입을 통해 추억마저 산산이 조각나지만 어쩔 수 없다. 뉴욕에서 엘에이로 양육권을 위해 왔다 갔다 하는 찰리는 그토록 매진했던 일에 신경 쓰기 버겁고, 마음은 너덜너덜하다. 양육권을 얻으려고 애쓰지만 지쳐간다. 아들은 아빠를 뺀 가족, 엄마와 할머니가 있는 엘에이에서 살겠다고 말한다.                


니콜은 지쳐가는 찰리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사랑이 부활할 수 없는 걸 안다. 두 사람에게 각자의 방식대로 살 때가 온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 이혼 소송 중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폭발하고, 분노는 절정에 달한다. 분노가 정점을 찍은 후 서서히 수그러들면서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남는다. 니콜은 찰리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뭘 주문할지 모를 때 대신 주문해 주고, 서로의 사회적 성공에 함께 기뻐한다. 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이고, 한때 서로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였다. 니콜이 이런 말을 한다. "헨리가 커가는 걸 보는 게 좋지만 아이가 점점 멀어지는 걸 깨달아요."   


한 가족이었던 세 사람은 각자의 삶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다. 이혼 과정은 내적으로 변해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찰리는 이혼 후에야 니콜이 그토록 원했던 엘에이에서 살아 보기로 결정한다. 함께 부대끼며 살 때 당연한 것들은 헤어지면 새롭다. 사랑해서 함께 가족을 이루는 것도, 헤어지는 일도 개인을 성장시킨다. 타인,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또는 사랑했던 타인의 욕구와 요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인간은 왜 임계점에 도달해야 깨달을까. 두 사람은 사랑했고,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할 것이고, 첫 만남에서 느낀 감정이 바래 가는 과정을 겪을 것이다. 니콜과 찰리의 이혼 소송에서 참담함을 보지만, 그 끝은 비극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이혼이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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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02 18: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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