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금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현실 부정은 어디에도 도움이 안 돼. 고정관념에 동조하는 결과를 낳을 뿐.
중년은 나이만이 먹은 게 아니라 가장 바쁜 시기다. 일하면서 가족을 챙기느라 정신없다. 나탈리는 고등학교 철학 교사이고, 그녀의 책은 재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녀의 제자 중 한 명인 파비엥은 그녀의 가르침 덕분에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철학자로 살려고 한다. 그녀는 사상적 교감을 나누는 제자가 있다. 가정에서는 남편은 그녀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그녀의 엄마는 우울증에 걸려 한밤중에 자주 전화하면, 그녀는 달려가곤 한다. 바쁜 일상을 살아내느라 나탈리는 분주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나탈리에게 고백한다.
-나 다른 사람이 생겼어.
-그걸 왜 나한테 말해. 혼자 묻어둘 순 없었어?
-그녀와 살고 싶어.
겉으로 문제없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균열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지만 관성에 따라 살아서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출판하려던 교재도 백지화되고, 아끼던 제자 파비엥은 사상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면서 산속으로 들어간다. 제자는 대안적 삶을 꿈꾸며 청년 집단을 꾸리더니 나탈리를 비판한다. 한밤중에 전화하는 엄마는 더이상 혼자 지낼 수 없어 요양원에 가서 결국 죽음을 맞는다.
남편의 선언과 동시에 나탈리의 일상에 폭풍이 휘몰아친다.
별일 아니야. 삶이 끝난 것도 아니야.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
한꺼번에 불어닥친 변화 앞에서 나탈리가 한 말이다. 지적으로 충만한 것이 모든 것을 떠나보내는 중년을 지탱할 수 있을까. 청년은 꿈꾸는 시기이다. 파비엥은 급진주의, 무정부주의를 꿈꾸며 대안 공동체를 만든다. 지식 공동체에서 그 누구에게도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이상적 집단을 운영하려고 한다. 중년에게 꿈은 꿈일 뿐이다. 나탈리는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 비록 제자가 시위나 참여 서명으로 참여 지식인 행세를 한다고 그녀를 비난해도 그녀는 급진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
중년에게는 청년과는 다른 힘이 있다. 중년에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이 있다. 청년에게는 없는 힘이다. 그녀는 말 그대로 ‘온전한 자유인’이 되었다. 곁에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침대에 누워 어둠 속에서 흐느끼지만, 다음 날 날이 밝으면 일어나야 하고 일어난다. 엄마와 함께 살던 고양이 판도라가 산속 제자의 집에 가서 쥐를 잡는 본능이 되살아나듯이.
중년이 된 나탈리의 본능은 무엇일까.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겠다고 집을 나갔고,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다 커서 품을 떠나 날아갔다. 제자마저도 그녀의 철학이 죽은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아이들을 생각하도록 돕는 일이, 그녀에게 남아있다.
나탈리는 그녀에게 찾아온 반갑지 않은 ‘완전한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자세를 보여준다. 태양이 우리 눈에 안 보여도 늘 그 자리에 있듯이, 나탈리를 지탱하는 자기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눈에 안 보일 뿐이지 그녀 주위에 위성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딸을 출산한 딸도 여전히 그녀의 딸이다. 나탈리와 다른 사상의 길을 걷지만 파비엥은 여전히 그녀의 제자이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이라든지 여름휴가에 제자를 찾아간다. 관계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녀가 과거에 맺었던 끈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 끈을 어떤 식으로 연결할지는 나탈리의 몫이다. 더이상 내 것이 아니라면 내려놓을 줄 알고 탐하지 않는 것. 이것은 중년이 되어야 깨닫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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