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금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레이디 버드>는 노아 바움백 감독이 연출한 <프란시스 하>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했던 그레타 거윅이 만든 영화이다. 가족도 싫고, 살던 동네도 싫어서 떠나고 싶은 십 대 소녀의 이야기를 보면서 철없던 내 청춘의 한 자락이 떠올랐다.
서른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 부모님을 집 앞 일식집으로 초대했다. 저녁 먹으면서 직장에서 3개월 휴가를 받아서 프랑스에 가 있겠다고 통보했다. 엄마의 반응은 “그럼 그렇지, 니가 꿍꿍이가 있어서지.”였다.
나는 한국에 다시는 안 돌아오겠다는 비장 하지만 대책 없는 결심을 했다. 비자 수속도 마치고 편도 티켓을 끊어둔 상태였다. 모아둔 돈도 다 환전했다. 다시는 안 돌아올 거라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떠벌렸지만 정작 가족은 아무도 몰랐다. 다시는 안 올 거니까 떠나기 전날 밤까지 송별회를 빙자해서 술을 마신 후 밤늦게 들어왔다. 약간의 숙취를 품고, 긴 비행에 올랐다. 인생을 너무 대충 생각했다는 건 프랑스에 가서 깨달았다. 나는 이십 대 동안 경계인으로 살았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 채 언제나 다른 곳에 있는 꿈을 꾸었다. 마담 보바리가 시골에 살면서 늘 대도시 파리를 꿈꾸듯이. 삼십 대를 이대로 보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프랑스에 정착하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은 프랑스에 간 지 6개월 만에 무너졌고, 지금으로 치면 프랑스에서 고작 1년 살이를 하고 돌아왔다.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외로웠고, 집을 떠나 독립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영화는 17살의 소녀가 부모가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직접 '레이디 버드'라고 자기 이름을 짓고 독립하려고 애쓰는 이야기이다. 엄마와 차 안에서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러다 잠시 후 엄마가 한 말에 기분 상해서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떨어져 팔이 부러진다. 18세 생일날, 성인이 된 기념으로 담배와 성인잡지를 산다. 그녀는 개성 강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여과 없이 생각을 바로 입 밖으로 쏟아내고 후회하곤 한다. 이제 막 성인기로 접어드는 문턱에서 이성과 섹스에 대한 관심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애증의 관계에 있는 가족. 남자 친구와 그 친구들과 가까워지면서 절친과 소원해졌다 우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녀는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엄마와는 늘 싸운다. 칭찬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지 서로 헐뜯기만 하는 오빠도 있다.
레이디 버드는 첫 키스를 한 밤에 터질 것 같은 심장으로 집으로 막 달려들어 온다. 엄마는 주방에서 남편이 해고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는 레이디 버드를 따라 들어가서 다음 날 입을 교복을 구겨지게 둔 것에 대해 나무란다. 첫 섹스를 한 후 심란함을 달래고 있는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는 목욕할 때 꼭 수건을 두 장 써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면 출근 전에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번거로움에 대해 말한다. 레이디 버드는 학교에서 벗어나 관계를 넓히면서 세상으로 나가는 중이라 혼돈 속에 있다. 엄마는 매일 출퇴근하고, 집안일하고, 레이디 버드를 훈육하고, 수입에 맞추어 레이디 버드에게 사 주어야 할 것을 제한한다. 레이디 버드는 부유한 동네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가난한 집이 부끄럽다. 레이디 버디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방을 안 치운 적이 없는지.
-나 키우는 데 얼마 드는데? 돈 벌어서 갚을 테니.
-넌 그만큼 돈 벌 직장을 구하지 못할 거야.
엄마의 진심은 이게 아니지만 화난 순간에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다. 레이디 버드는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떠나 동부로 진학하고 싶어 한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녀를 비웃는다. 그녀가 동부의 명문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듯이. 발광하는 시간이 끝나고 레이디 버드는 소원대로 뉴욕대에 합격한다.
집을 떠나와 낯선 도시에서 아마도 신입생 환영회(?)쯤 되는 모임에서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로 술을 마신다. 응급실에 실려 가는 소동이 있고, 다음 날 레이디 버드는 다시 태어난다. 크리스틴이란 부모님이 준 이름으로. 가톨릭 고등학교를 나와 성당에는 얼씬도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일요일 생경한 도시에서 성당에 자기 발로 찾아가서 미사를 본다. 그리고는 자신의 뿌리를 강하게 느낀다. 벗어나려고 했던 애증의 대상은 어느새 성인이 된 소녀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레이디 버드는 가족, 우정, 사랑이 분리되고 선명한 것이 아니라 서로 혼재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이따금 나는 엄마와 크게 다툰다. 엄마는 내 말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고 말하곤 한다. 안타깝게도 나와 엄마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점이 서로 닮았다. 레이디 버드와 그녀의 엄마를 보면서 나와 엄마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레이디 버드가 뉴욕으로 떠날 때, 엄마는 편지를 쓰려고 하지만 완성하지 못해서 건네지 못한다. 구겨진 여러 장의 편지를 레이디 버드의 아빠가 그녀의 짐 속에 넣어 둔다. 건네지 못한 편지에는 ’레이디 버드에게‘로 시작한다. 맞춤법이 틀려서 딸이 흉볼까 봐 건네지 못한 편지에서 내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모녀가 애증 관계라면 두 사람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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