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금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부모, 특히 엄마의 존재는 어른으로 묘사된다. 한 인간으로서 인격적 면에서는 불완전하고 삐뚤어졌어도 자식 일에 물불 안 가리고 헌신적인 모습이 종종 어른, 엄마라는 역할에 따라붙는다. 자식을 자신의 방식대로 지키는 게 완벽한 엄마일까? 엄마는 완전한 어른일까?
한국 영화와 달리 외국 영화에서는 엄마의 존재는 전혀 다르게 묘사되어서 놀랄 때가 많다. 우리한테는 탐 크루즈의 딸 수리, '수리 엄마'로 알려져 있는 케이티 홈즈가 감독했고 주인공을 연기한다. 딸 루시와 엄마 리타. 리타는 '금사빠'이고,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이다. 일도 없고, 사랑에 금방 빠졌던 남자들과 살다가 도망치는 일이 빈번하다. 무일푼의 모녀는 언제 멈출지 모르는 차를 타고 도망친다. 필요한 물건은 마트에 들어가서 엄마가 망을 보고, 딸이 훔쳐서 나온다. 모녀의 생존 방식이다. 딸에게 모범이 전혀 안 되는 것도 모자라서 보여주지 말아야 할 모든 것을 보여 준다. 엄마라면 딸을 위해 술을 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배반한다.
엄마라는 전형적 시선에 보면, 리타는 뉴스특보 감이다. 리타는 장래가 창창한 어린 딸에게 마트에서 생필품을 훔치게 하고 있다. 딸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제도권의 법은 이 사실을 알자마자 두 모녀를 떼어놓을 것이다. '엄마 자격'이 없는 엄마는 누가 판단하는가? 두 모녀는 사이가 좋다. 리타는 루시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리타는 상황 때문이기는 하지만 하루하루를 즉흥적으로 살고 있다. 계획이나 올바른 규범에 대해 루시에게 설교하지도 않는다. 어른이 아이에게, 혹은 엄마가 자식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있는 건, 상대의 마음을 자신의 방식대로 휘두르기 위해서는 아닐까?
루시는 힘들고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자라고, 사춘기가 된다.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를 따라 술도 마시고, 대마초도 핀다. 그녀는 학교에서 징계를 받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다. 처음 말썽을 피운 거고,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엄마가 새 남자 친구 집에 들어갔을 때 루시는 저항한다. 엄마 옷장을 뒤져서 옷을 입고, 엄마 화장품을 바르고 파티에 가서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다. 리타는 이런 딸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네가 넘어졌을 때 안 아프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어.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의 솔직한 말에 딸은 대답한다.
"엄마가 필요해."
"내가 너를 더 필요로 해"
"사랑해요, 엄마."
리타는 엄마를 떠올리면 떠오르는 모습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리타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이고, 생계를 이어가는데 자신이 없고 두렵다. 인내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른다. 그런 리타에게 딸 루시는 감정적 지지대이다. 두 모녀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견고한 버팀대가 있다.
영화에서 리타와 루시 모녀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보다는 어려운 현실에 내던져진 친구 혹은 동반자 관계이다. 우리는 친구의 범위를 협의로 사용한다. 친밀한 또래를 친구로 부른다. 영화 속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은 친구가 된다. 각 개인이 처한 어려움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은 팸이 건달들에게 강간을 당할 때 도와주고, 그 상처를 어루만져 준 사람은 부정적 경험을 했던 루시와 리타였다. 불완전한 존재는 불완전한 존재가 필요하고,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다. 위로와 공감을 주는 존재가 있을 때 암담한 현실을 살아나갈 힘을 다시 그러모을 수 있다. 불완전한 존재가 결코 불완전하기만 한 게 아니다.
영화는 별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끝난다. 모녀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특별히 사정이 나아지지 않아서 비슷한 과정을 또 겪을 것이다. 두 사람 앞에 놓인 현실을 어떻게든 헤쳐나갈 것이다. 모녀의 단단한 사랑이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져도 덜 외로울 것 이다.
보통 모녀 관계에서 출발점은 이미 한쪽으로 추가 기운 관계이다. 엄마는 늘 어른 역할을 해서 힘들었을 것이고, 그걸 몰라주는 딸년에게 섭섭했을 것이다. 엄마는 어른 이전에 나처럼 욱할 때도 있고, 다 꼴 보기 싫을 때 심통도 부리는,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엄마는 완전한 어른도, 불사신도 아니고, 나와 같이 늙어가는 동료라는 걸 기억하자.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