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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육아와 살림을 한다면 - 대체로 흐리고 가끔 맑음 <박강아름 결혼하다>
  • 기사등록 2023-02-06 11: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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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학교를 졸업하고, 밥벌이를 하면서 어릴 때 어떤 꿈을 꾸었는지 잊었다. 월급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기뻐하면서 하루하루 보냈다. 어느 순간 편하게 사는 데 익숙해졌고, 편리와 편함을 잃는 것이 두려워졌다. 사는 대로 생각하고, 가벼운 즐거움에 점점 빠지고 있다. 박강아름 감독은 이런 나와 전혀 다르게 사는 사람이다. 감독이 이십 대일 때부터 그의 사는 방식을 보면서 흠모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신념을 굽히지 않고 주체적으로 산다. 그는 편안한 일상과 타협하지 않고,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고 살다가 한국 사회를 떠났다. 한국은 영화의 한 장르인 자기 이야기를 담는 자전적 다큐멘터리를 배척해서 떠나는 일이 절실했다고, 영화에서 밝힌다.


박강아름 감독은 결혼 후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유학 중에 출산도 했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남의 나라에서 공부하면서 출산하고, 양육을 고민하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가정 내에서 성역할이 바뀌면 가부장제는 없어지고 평등한 부부 관계가 될까. 감독은 자신에게서 가부장적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가부장’이란 가정 내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인데 가부장의 권력은 어디서 나오나. 아내는 공부를, 남편은 살림과 육아를 하는 가족 공동체를 이루며 불협화음이 나온다.



나는 왜 결혼했을까?



감독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혼자 프랑스에 가기 싫었다고. 혼자 사는 게 싫어서 결혼했다. (물론 남편과 사랑에 빠져서) 혼자가 싫어서 결혼했지만 아이러니하게 혼자 있고 싶은 순간들이 영화에 많이 담겼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을 마음에 들이는 일이다. 사람을 마음에 들이는 일에는 배짱이 필요하다. 마음에 안 드는 순간을 기꺼이 참아내고, 양보하겠다는 배짱.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사는 것은 자신의 뜻을 끊임없이 꺾는 일이다.


감독은 프랑스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 언어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서 남편에게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싶어 한다. 아내는 학교에 가고, 육아는 집에 있는 남편 몫으로 남겨진다.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우울해 한다. 두 사람은 종종 다툰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을 한다.



아이가 밥을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모르는 엄마야.



육아는 시간 싸움이다.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이 아이에 대해 많이 알 수밖에 없다. 집안일도 마찬가지고, 학업, 일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진다. 모든 일에 주의력을 똑같은 비율로 기울일 수는 없다.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 시간을 많이 보내면 그 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아는 전문가가 된다. 우리는 살림 전문가를 ‘주부 9단’이라고 부르곤 한다. 살림과 육아 분야는 공식 인증서가 없고, 대가도 없다. ‘주부 9단’이란 호칭만으로 보람을 찾기 쉽지 않다. 주부 9단에는 살림에 쏟은 많은 시간 동안 혼자만의 전문 영역에 남겨졌다는 말이다. 남편이 살림과 육아를 할 경우에도 '주부'로서 고립과 단절의 시간을 겪는다.


영화 상영 후 있었던 GV에서 PD가 말하길, 박강아름 감독이 작업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고립과 단절감이라고 했다. 감독에게 작업 시간은 고립과 단절의 시간이지만 영화가 상영되면 영화에 반응하고, 호흡하는 관객들이 있다. 영화 작업은 고립되었던 전문 영역에서 사회적이고 공적인 전문 영역이 된다. 감독이 영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남편이 살림과 육아에 전문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감독의 작업처럼 공적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결국 살림과 육아를 하는 사람이 아내든 남편이든 공적 영역으로 끌고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주부 우울증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남편이 살림과 육아를 책임질 때, 가족 내에서 가부장의 권력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사회 활동을 하는 아내는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은 아니지만 가족 내에서 권력 관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끝날 무렵, 두 사람은 덩케르크의 바다에 갔다. 비가 내려서 두 사람 다 비옷을 입고 비옷에 달린 모자를 눌러썼다. 남편은 비 오는데 왜 바다에 가서 촬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기차 안에서 그들은 서로 얼굴을 돌리고 있다. 기차에서 내려 두 사람은 경직된 표정으로 유모차를 끌고 바닷가 모래사장에 이르렀다. 유모차 바퀴는 모래에 빠져서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바람은 세차게 불고, 멀리서 커다란 파도가 부서졌다. 두 사람이 각자 떨어져서 가다가 한 사람이 유모차 앞을 들고, 한 사람이 유모차 뒤를 들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비바람은 계속 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유모차를 내려놓고 각자 우산을 폈다. 우산은 바람의 힘을 못 견디고 반복해서 뒤집어졌다. 두 사람은 뒤집어진 우산을 바로 잡으려고 애썼다.      

어릴 때는 결혼을 추상적으로 받아들였다. 서로 좋아해서, 사랑해서 하는 거라고. 세상의 쓴맛(?)을 본 중년이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결혼 생활은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절실함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절실함이 사랑이든, 외로움이든, 혼자 늙어갈 거라는 불안이든. 비바람을 맞으며 혼자 바둥거리다 상대방 옆에 슬그머니 가서 비바람을 피하게 손을 내미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 성역할의 고정관념은 성역할이 바뀌어도 계속되는 것 같지만 그 힘든 시간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것이 결혼 생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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