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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마다 드는 생각은 제각각이다. 가령 가슴운동을 심하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혹은 큰 좌절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심장과, 폐가 좋지 않은 분들을 돌보다 보니 '가슴이 아프다.'라고 하면 '혹시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걸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이유는 흉통이 심장질환을 나타내는 유의미한 증상이기 때문이다.


인수인계를 하다가, 흉부외과 중환자실의 과거력을 들어보면 비슷한 구석이 있다.


상기 환자 특이 과거력 없던 환자로 계단을 오르다가 가슴 통증과 숨이 찬 증상 호소하여 내원하였으며 CT상 대동맥 박리 소견 보여 응급 수술 위해 본원으로 전원함.


상기 환자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있으며 2007년 스텐트 시술한 과거력 있으며 흉통 호소하여 진행한 CT상 관상동맥 세 혈관이 막혀서 관상동맥우회술을 받기 위해 입원함.


이렇듯 의료진에게는 '가슴이 아프다.'라는 것은 단순한 의미는 아니고 심장의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사인이기도 하지만, 보호자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을 했다가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거나 혹은 사망하게 되는 경우에는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멀쩡하게 걸어서 병원에 갔던 사람인데... 수술이 잘못된 거 아니에요?'


중환자실에서 일을 해보지 않았을 때는 보호자 입장에서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으니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호자 입장에서는 수술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은 했지만 하라는 대로 따르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병원에 걸어 들어갔던 환자와 이별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니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의료진의 입장도 눈에 보인다. 일단, 심장 수술 중에 대동맥이 찢어지는, 대동맥 박리 수술의 경우에는 수술을 해서 살 수 있는 확률이 50%, 죽는 확률이 50%이다. 그만큼 난도가 높고 위험한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전에 충분히 설명을 한다. 그리고 대동맥 박리의 특성상 갑자기 의식을 잃거나 가슴 통증을 호소해서 응급실에 오는 경우가 많고 흉부외과 의사는 남들이 잠을 자고 있는 새벽시간에 부리나케 달려 나와 수술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워낙 큰 수술이기 때문에 대동맥 박리 수술 후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는 피가 엄청나게 난다. 피가 많이 나는 환자의 경우, 중환자실에 와서 간호할 때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혈압, 맥박, 체온, 산소포화도 등 어느 하나 안정적인 게 없기 때문에 급변하는 환자의 생체 징후를 감시해야 하고 약을 조절하고, 배액관을 비우고, 끊임없이 수혈 간호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면 다행인데, 그러면 모든 사람이 아프지 않고, 행복할 텐데, 애석하게도 현실을 그렇지 않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음에도 우리 곁을 떠나는 환자분들은 점점 심장이 멈춰간다. 심폐 소생술이 1시간 넘게 이어지고, 가슴 압박을 하는 의료진들의 온몸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응급 카트에 있는 약들도 다 쓰고 있을 무렵 주치의 선생님을 향한 보호자의 날카롭고 분노에 찬 말이 중환자실에 울렸다.


'당신이 죽였지? 내 아들 살려내!'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복잡하고 힘이 빠졌다. 무엇을 위해 열심을 내고 있는 걸까.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어떻게 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살리면 당연한 거고 못 살리면 죄인이 되는 것 같은 냉정하고 엄격한 잣대 앞에서 과연 나는 환자 및 보호자분들에게 언제까지 애정과, 따뜻함을 담아 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하고 있는 간호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무게를 견디려면 얼마나 더 성숙해져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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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0-28 15: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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