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웅
[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건강검진을 받다가 우연히 심장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 수술을 받게 된 환자분이 중환자실로 왔을 무렵 중환자실은 역시나 풍비박산인 상황이었다.
- 병동에서 환자분 언제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지금 출발할 수 있어요?
- 선생님, 5번 bed로 나오실 환자분 수술 거의 끝났다고 하고요 약은 levo(norepinephrine, 승압제)랑 vaso(vasopressin, 혈관 수축제) 달고 내려온데요
- 수술 환자 나왔어요. 1번 bed로 받을게요.
의료진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수술 환자 곁에 4~5명이 달라붙어서 한 명은 patient monitor에 연결되어 있는 EKG, SpO2 sensor, A-line, C-line, swan-ganz catheter wave가 monitor에 나오도록 연결하고 다른 이들은 배액관, 소변줄 확인, 인공호흡기 연결, fluid 용량 확인 등을 한다. 한 팀으로 각자 필요한 위치에 가서 일을 처리하는 장면은 목격할 때마다 신기하다.
처음 교육받을 때는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아서 버벅대고 있는 내 모습과 달리 능숙하게 일을 처리해나가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했고 내 부족함이 보여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동안 비슷하게 해 보려고, 잘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더니 어느새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었다. 예전엔 참 어려워했던 나였는데 어느새 선생님들의 모습을 닮아간다.
환자 곁에 가서 약물은 잘 들어가고 있는지, 인공호흡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피부 상태는 괜찮은지 확인하고 있을 무렵 마취약의 기운에서 깬 환자 분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이 곳이 어디인지,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하면서도 조금은 두려워하는 그 표정을 한 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자연스레 상황설명을 했다.
- 환자분 놀라셨죠? 수술 잘 마쳤고요 회복하려고 지금 중환자실에 오셨어요.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몸에 위험한 관이 많아서 억제대를 하고 있는데 제가 수시로 곁에서 보고 있으니까요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상황 파악이 된 환자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불편한 환경 가운데 잠을 청했다. 시간이 흘러 활력징후도 안정되고 상태 호전이 빨리된 환자분은 인공호흡기를 일찍 빼게 되었다. 'deballooning 해주세요.'라는 레지던트 선생님의 말과 함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는데 다행히 환자분은 숨도 잘 쉬셨고 쉰 목소리도 나왔다. 몸에 아직 묻어있는 소독약을 닦아내고, 옷을 입혀드리고 있는데 환자분이 불쑥 말을 건넸다.
'선생님. 고마워요. 눈을 딱 떴을 때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어서 목소리는 안 나오고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저를 편안하게 해 주셔서 잘 버틸 수 있었어요.'
그 말을 듣는데 막 독립해서 환자를 보고 있을 무렵 환자는 계속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고 나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당황했을 때가 떠올랐다. 헤매고 있는 내 모습과는 달리 환자가 무엇을 궁금해할지, 어떤 부분을 불편해하고 불안해할지 먼저 헤아리고 능숙하게 설명해주시던 경력 간호사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을 것만 같았다. 그 배려심과, 이해심과, 사려 깊은 마음이 환자분은 물론 내 마음도 울리고 편안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따라갈 수 없었을 것만 같았던 그 모습도 시간이 흘러 어느새 닮아간다. 환자분의 고맙다는 그 말이 정말 고마웠다. 아직 경력 간호사 선생님의 모습을 따라가기엔 멀었지만, 고맙다는 그 말로 인해 더 사려 깊게 대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실천할 힘을 얻었다.
환자분의 입장에서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불편함을 하나도 느끼지 않을 수 없겠지만 불편함 가운데 간호사와 함께하면서 순간순간 편안함을 누리고, 회복에 대한 의지를 놓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렇게 환자분이 회복되어가는 순간을 많이 마주하는 만큼 사려 깊은 마음과, 섬세함이 길러져서 어느새 내가 존경하던 선생님들의 모습과 닮아져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