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웅
[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환자의 몸에 달린 장치가 하나씩 늘어날수록 중환자실 재원기간은 늘어난다. 심장, 폐, 신장의 기능을 대신해주는 기계들, 혈압을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많은 약물들에 둘러싸인 공간을 바라보자니 숨이 탁 막힌다. 수건으로 얼굴과, 손, 발을 닦아드리며 얼른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한번 잡아본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탓인지 손은 약간 차갑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말초의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는 약물을 끊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손끝과 발끝의 색깔이 점점 보랏빛으로 변해간다. 이대로 가다간 보랏빛이 검게 바뀌어 손과 발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심장은 어찌어찌 위태로운 상태만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있는 환자분은 "사람 살려"라며 소리 지르고, 침대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섬망이 온 것이다. 저번에 한 환자분과의 대화를 통해, 진정 약물을 사용했을 때 유니콘이 지나가기도 하고, 누가 당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모습이 보여서 그랬다는 경험을 듣고선 아마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환자에게 간호사 5명이 달라붙어 신체 억제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 중에 나의 동료는 손으로 등을 맞고 발로 얼굴을 맞았다. 기분이 나쁠법한데도 '에이...'라며 참고 넘어간다. 현재 보이는 환자분은 정상적인 상태의 모습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섬망 증상이 왔던 환자분도 일반 병동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아직 몸에 달린 장치가 많았던 환자 분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부정맥도 잦아지고, 혈압도 점점 떨어졌다. 혈액 검사 상 모든 수치 들이 정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불행의 파도를 중환자실에 있는 의료진들이 온몸으로 막아보고 있었지만 점점 더 커지는 파도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동공이 반응하지 않고,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변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상태. 심장의 박동 수가 줄어드는 만큼, 환자와 이별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호자에게 최대한 빨리 병원에 오실 수 있게 연락을 부탁하는 다급한 전공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다 해보고, 비닐 가운과 마스크를 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 곁을 지켰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끝내 환자분은 가족들 곁을 떠났다.
늘 그렇듯 이별의 순간은 먹먹하다. 흐느끼고, 소리 내며 우는 보호자 곁에서 할 수 있는 건 침묵을 지키며 옆에서 함께 있어주는 일이다. 헛헛하고 상실감이 큰 마음을 표현할 곳이 없어 때론 소리 지르고, 탓하는 모습을 직면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본심이 아님을 안다. 그 와중에 앰뷸런스는 어떻게 이용할 건지, 장례식장은 정해진 곳이 있는지, 사망 진단서는 몇 부가 필요한지와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더 위로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다음 일을 또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죽음이 지나가고 있을 때, 다른 쪽에서는 수술을 받고 회복하러 온 환자분의 침대가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다시 또 환자 한 명을 살려보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잠을 못 자고, 끼니를 걸러가며 그들 곁을 지키는 시간이 반복될 것이다. 이번에는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 결과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렇게 중환자실의 시간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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