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경
[The Psychology Times=신선경 ]
나에게 '첫사랑'은 꼭 초콜릿 같다.
그 시절 누군가를 절절히 사랑했던 나의 마음은 참 달콤하지만, 녹으면 녹을 수록 쓴 맛을 풍겨오는 초콜릿처럼 이루어지지 못한 단꿈이라는 사실은 내게 사무치게 씁쓸한 감정을 선물한다.
하지만, 결국 입안에 남는 것은 달디 단 향이라, 다시금 찾게 찾을 수 밖에 없는, 드문드문 생각나는, .. 그것은 초콜릿, 아니 첫사랑이다.
첫사랑, 왜 잊지 못할까?
모두 한 번쯤 인생을 살아가면 '첫사랑'을 겪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너무 달아 이가 빠질 것만 같은 경험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카카오 본연의 맛처럼 쓰디 쓴 경험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모두 어떤 맛의 경험을 했든지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사랑의 경험을 쉬이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이처럼 첫사랑은 우리에게 흔히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이라고 인식되며, 일종의 질투 유발 장치로서 기능을 하기도 하는데, '왜' 우리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처음'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모든 '처음'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아야 할 것인데, 꼭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당신은 첫 친구와 함께 보냈던 기념일을 기억하는가?
사실 첫 친구가 누구인지도 가물가물할 것이다. 똑같이 7살에 첫 친구와 첫 사랑을 했다고 하더라도, 후자가 훨씬 선명하게 기억이 날 것이다. 왜 다른 처음과는 달리 유독 이상하게 첫'사랑'만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 아미그달라의 활성화
과학계에서 주장 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미그달라의 활성화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사람의 대뇌 중에서는 감정과 관련된 변연계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아미그달라라고 불리는 영역은 강렬한 상황의 순간에 활성화가 되면서 감정과 관련된 순간들이 기억에 남게 한다. 쉽게 말하면 교감 신경의 활성화가 극대화 되며, 그 당시의 상황이 우리의 뇌 속에 아주 생생하게 각인이 되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감신경의 활성화', '각인' 이런 단어들이 쉽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쉬운 방법으로 다들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려보자. 처음 누군가 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자주 생각하고 그 사람의 주위를 맴돌게 된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예쁜 장소에 가면 그 사람이 문득 생각나고, 그 사람이 평소에 자주 나타나는 장소에 진을 치고 기다리며 언제 나타날 지 생각한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그 사람을 마주치게 되면, 갑자기 손발에 땀이 나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그리고 우연히 첫사랑을 만난 그 경험은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 속을 헤집어 놓는다.
만약 당신이 첫사랑에게 사랑 고백을 하거나, 성공적인 고백으로 사귀게 되어 스킨십 또는 키스를 하게 되었다면 아마 더 큰 심장 고동을 느끼게 될 것인데, 그러한 심장고동과 비례해 당신은 그 첫사랑을 더 쉽게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첫사랑과 헤어지게 된다면, 처음 겪는 사랑에 대한 큰 상실감에 이후에 하게 되는 사랑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고, 그 결과 더 깊숙이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이다.
이때, 그렇다면 모든 사랑은 다 똑같이 기억에 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첫사랑은 '처음'이라는 것이 포인트일 뿐 사랑의 감정이 유독 크기 때문에 첫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미그달라'의 활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름과 같이 말한다. 복싱에서 맞을 준비를 맞친 뒤 한 대 맞는 것과, 예상치 못하게 한 대를 맞는 것 중 후자가 더 센 공격으로 느껴지듯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나타난 첫사랑이 사랑에 대한 면역이 없는 우리에게 큰 감각을 보내는 순간 우리는 더 크게 아미그달라가 활성화된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쉽게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그 두려움이나 설렘의 정도가 다른 것보다 훨씬 크고, 그래서 '아그달리마'의 극대화는 다른 이후의 사랑보다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 자이가르닉 효과
한편, 또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자이가르닉 효과이다. 이 효과는 쉽게 말해 '끝내면 모든 것이 잊히지만, 끝내지 않으면 기억된다'는 것이다.
아, 뭔가 알듯말듯 한가? 그렇다면 드라마 예고편을 생각하면 가장 분명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드라마 예고편은 항상 확실히 끝내지 않아 일부러 사람들의 기억속에 그 내용이 더 깊이 남도록 하는 대표적인 장치를 시청률 확보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적 할머니를 따라 매일 연속극을 봤는데, 그것은 불가항력이었다. 너무나 결정적인 순간에 드라마가 끝이나 버려, 다음 화를 보지 않으면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을 지 반전의 반전을 스토리를 계속해서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즉 항상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기 직전이나, 핍박 당하던 주인공의 고구마 같은 스토리에서 사이다를 먹기 바로 직전과 같이 정말 궁금해 미치기 직전인 순간에 음악이 흘러나오며 예고편을 마주해야 했기에, 난 항상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연속극이 방영 할 시간에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텔레비전 앞에서 다음 화를 기다렸다.
그런데 만약 드라마의 예고편이 이와 달리 내가 원하는 장면을 모두 다 보여준 채 마쳤다고 생각해보자. 그랬다면 내가 과연 본방사수를 하겠다고 그 자리에 앉아 있을까? 이미 내가 궁금한 것을 다 알게 된, 즉 명확히 끝낸 내용에 대해서 나는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나의 흥미를 더 끄는 색종이 접기나 선생님 놀이 심지어 다른 애니메이션을 보러 가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확실히 끝내지 않아 일부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깊이 남는 것, 그것이 바로 자이가르닉 효과 다른 말로는 미완성 효과라고 부른다. 이들은 첫사랑 역시 자이가르닉 효과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사랑을 하고 매듭을 지었던 다른 사랑과는 달리, 끙끙 앓다가 아쉬운 실패를 맛봤던 첫사랑은 우리의 기억 속에 더 깊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두 근거들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무엇이 더 타당한 근거처럼 느껴지셨나요?
사실 명확한 답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하나의 학설들에 불과하죠.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무엇이 명확한 답인지 알지 못해도 상관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며, 희미하게 나마 나의 '초콜릿'을 떠올리게 되는 날이 있다면, 억지로 그 일을 잊으려 하거나 더 생생하게 기억해내려 할 필요 없이, 그냥 아 이런 생리적 현상 때문에 그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면 충분할테니까요.
우리는 상당히 많은 순간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 많은 순간 속에서 어떤 파편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남겨져 있다는 것은 정말 뜻 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는 못했지만, 제게 또 다른 의미의 '잊혀지지 않는 사랑스런 초콜릿'을 선물해주는 저의 신기한 신체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글을 읽으시면서, 오랜만에 추억 여행을 한 번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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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부터 비합리적이지만, 더 나은 내가 되겠습니다.
참고문헌
- 첫사랑을 왜 잊지 못하는 것일까? (정신의학신문, 김태훈 정신의학과 전문의)
- 기억에 정서를 입히는 편도체 (브레인 미디어, 브레인 30호)
- 끝내지 않아 찝찝해, '자이가르닉 효과' (기획재정부, 일상에서 만나는 경제이야기)
- 무심아 and 양재범. (2020). 광고여백에서 나타나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Journal of Integrated Design Research, 19(4), 111-124.
- [교육현장 이야기] 끝내지 못한 일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 (매일경제, 202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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