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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이브닝 근무가 끝나가고 나이트 근무가 시작될 때 즈음 중환자실 문이 열리며 방금 수술을 마친 환자를 태운 침대가 들어왔다. 20대, 남들은 청춘의 시간을 누리고 있을 무렵 명호(가명)는 막 4번째 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에 숨을 의지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명호를 처음 봤을 때 남들보다 왜소한 체격, 조그마한 손과 발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수술을 해서인지 손과 발이 차가워서 얼른 이불을 덮어주고 따뜻한 바람으로 몸을 데워줬다.


태어나자마자 심실이 하나밖에 없었던 명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계적으로 수술을 받았다. 시기적절한 수술을 통해 심장기능은 유지가 되었으나 다른 질환으로 인해 명호는 몸과 정신의 성장이 더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가래를 혼자 뱉어낼 수 없기에 옆에서 사람이 꼭 도와주어야 했고 그 역할은 오롯이 부모님밖에 할 수 없었다. 침상 생활을 계속했을 명호의 몸에서 욕창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던 건 수시로 자세를 바꿔주고 돌봐주었던 부모님의 헌신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COVID-19로 인해 병원에서 면회는 금지되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명호의 부모님은 수화기 너머로 상태를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병원을 많이 오고 가셨던 경험 때문인지 명호의 부모님은 통화를 할 때마다 "바쁜데 정말 미안합니다."라며 정말 궁금한 몇 개만 물어보고 서둘러 통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날 때면 명호 본인과 부모님이 가장 속상하고 아픈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텐데도 오히려 의료진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괜스레 울컥했다. 또한 통화 말미에 "기저귀나 물티슈, 휴지같이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병원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으면 먼저 이렇게 말을 하실까?'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쓰였다.


수술 직후 명호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고 있었고 폐에 있는 가래의 양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1시간 아니, 30분마다 계속해서 가래와 입 속 침을 제거해주었지만 쉽사리 가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도 차도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명호의 부모님은 명호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했다. "바쁜데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혹시라도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건 아닌지 기대하고 있을 명호의 부모님께 기대와 달리 비슷한 상태이고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겠노라고 답할 수밖에 없어서 속상했다.


중환자실의 시간이 계속 지나는 동안 명호의 자세는 머리를 살짝 세운 채 똑바로 누웠다가, 왼쪽으로 누웠다가,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엎드린 채 있기도 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주로 폐 상태를 좋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좋지 않은 폐 쪽에 진동기도 갖다 대고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들이 명호에게 효과가 있었는지 다행히도 혈액 속의 산소 수치도, 환자 모니터 상의 산소포화도 수치도 점점 호전되어 갔다. 매일 걸려오는 명호의 부모님께 이제 내일쯤이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을 건넬 수 있었을 때 부모님도, 의료진들도 모두 기뻐했다.


다음날 오전, 회진이 끝난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보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명호의 자세를 앉히고, 자발 호흡을 연습시킨 후에 혈액검사 상 산소 수치를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그렁그렁한 가래소리가 들리며 가래가 한 움큼 나왔다. 그러나 아직 가래소리가 많이 들리는 걸로 미루어 보았을 때 폐 속에 남아있는 가래가 많다고 여겨졌다. 문제는 명호 스스로 가래를 뱉어낼 수 없었다는 점인데 시간이 지나자 우려했던 대로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산소포화도는 점점 떨어지게 되어 결국 인공호흡기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명호의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게 되었을 때 속상함과 막막함이 전해져서 마음이 아팠다. "그럼 언제까지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기약할 수 없는 상황임을 에둘러 설명하며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무력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할 때면 보호자 대기실에 있는 의자에서 낮이나 밤이나 명호를 기다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치료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명호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한 일주일쯤 시간이 지났을 무렵, 출근을 했는데 명호가 인공호흡기를 뗀 채 편안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이전에 근무했던 동료에게 명호의 상태를 물어보니 시간이 흐르며 폐상태는 호전되었고 가래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을 때는 호흡곤란이 없이 숨을 잘 쉬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동안 명호가 어떤 치료과정을 겪었고 명호와 부모님이 감당했던 시간을 알고 있었기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호의 상태는 더 호전되어 일반병동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황 가운데 삶을 함께 걸어가는 명호네 가족을 떠올릴 때면 숙연해진다. "바쁜데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배려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명호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주고 함께 살아가는, 어쩌면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부모님의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과연 내 가족이 병을 얻게 되어 주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나의 삶을 포기하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족 곁에서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며 돌봐줄 수 있을까. 그렇게 곁을 지키는 가운데 타인을 향한 배려심을 잃지 않으며 일상의 기쁨과 감사를 찾을 수 있을까. 이제는 명호네 가족에게 웃을 일과 행복한 일이 가득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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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2-08 15: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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