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웅
[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중환자실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따뜻함보다는 차가운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중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있기도 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를 살리려면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냉철하게 판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이 우선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의료진, 환자의 표정에서는 웃음을 잘 찾아볼 수 없고 굳어있는 모습을 주로 보게 됩니다.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변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바로 중환자실에서 회복되어 일반병동으로 이동하는 환자분들을 마주칠 때입니다. 어쩌면 의료진, 환자 모두가 바라고 있는 따뜻한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차가운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환자 곁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공호흡기, CRRT, ECMO 등의 기계를 보면 경이롭습니다. 심장과, 폐, 신장의 기능을 대신해주는 기계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살릴 수 없었던 환자분들도 지금은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환자실 간호사로 환자들을 돌볼 때 질병의 치료와 환자이기 전에 인격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돌보는 것 사이에서 혼란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중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며 흔히 실수하는 것은 환자를 수치나, 자료로 바라보고 대할 때입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얼마이고, X-ray 소견은 어떠하고, 사용하고 있는 항생제는 무엇인지와 같은 객관적 사실은 환자를 치료하는데 필요하지만 사실 환자 입장에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중환자실에서, 자신의 상태가 언제든지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은 덤으로 안은 채 홀로 외로운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는 주관적 사실 또한 크게 느껴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가족들이랑 통화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그 모습이, 자신의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불안해하며 물어보는 그 모습이 환자의 상황을 공감하게끔 합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의 상황을 헤아려 봅니다. 몸에 삽입되어 있는 중심정맥관, 동맥관, 배액관, 도뇨관 등으로 인해 침상을 벗어날 수 없으며 하루 종일 제한된 공간 내에서 식사를 하고 대, 소변을 해결하며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환자분들에게 많이 듣는 부탁 중에 '한 번만 걸어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라는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을 들을 땐 당신의 마음을 공감하지만 몸에 삽입되어 있는 관이 빠질 가능성, 언제 바뀔지 모르는 혈압과 맥박 등을 이유로 해결해 줄 수 없음을 설명하고 일단 거절합니다. 곧이어 환자의 표정에서는 수긍하면서도 실망감에 휩싸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환자분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고, 나 역시도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있으면 침상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환자분의 마음을 달래 보지만 자율성이 제한된 환경에서 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질병의 치료와 인격적 돌봄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냉철한 판단에 휩쓸려서도, 그렇다고 감정에 휩쓸려서도 안 되는 것. 어느 하나 치우치지 않게끔 적절히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 중환자실 의료진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환자의 상황에 공감하며 마음 아파하고 살리지 못한 환자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프로답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이기 전에 한 인격을 가진 존재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환자는 그 사실을 바로 알아차려버립니다. '나를 한 인격으로 대하기보다는 질병으로 바라보고 대하는 구나.'라고 말이죠. 환자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격적 돌봄을 놓치지 않는다면 어떤 장면을 마주칠 수 있을까요?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환자의 회복 속도가 빨라짐을 마주치게 됩니다.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의료진과 환자가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로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그렇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울해하고 있는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위로가 되어주었을 때, 회복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고 지쳐 있는 환자 분에게 할 수 있다고 손을 잡고 격려하며 환자분과 함께 했을 때, 환자분들의 눈빛이 달라지며 살아갈 의지를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이는 환자에게나, 의료진에게나 모두 힘이 되는 순간입니다. 환자분은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고, 의료진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계속해서 역할을 감당해 가게끔 이끄는 보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중환자실에서 때론 급박하고 위중한 상황들로 인해 마음의 여유를 곧잘 잃어버리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환자에게 다가가는 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낯선 곳에서, 환자분이 의지할 데라곤 의료진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료진이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주고 돌봐준다면 환자분은 얼마나 큰 힘과 위로를 얻을까요? 나의 배려와 관심이 환자분에게 살아갈 의지를 강화해줄 수 있다면 계속해서 시도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애쓰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 곁에서 함께하고 있는 의료진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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