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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응급 상황에서도 차분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환자를 사랑하며 사람을 살리는 실력을 갖춘 사람. 같이 일하는 어느 의사 선생님을 떠올리면 하게 되는 생각이다. 그분은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량이 많음에도 늘 친절한 태도로 환자와 동료들을 대하며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중환자실에 와서 환자의 상태를 살펴본다.


어느 날, 어떤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급격하게 떨어져서 치료를 하기 위해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서 치료하게 되었다. 인공호흡기를 했음에도 환자의 폐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CRRT, ECMO와 같은 장비를 사용하여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관을 삽입하기 위해서 환자의 몸을 소독하고 일사천리로 투석관과, 심폐기능을 도와줄 관을 삽입했다. 그렇게 가래를 뽑아주고, 지속적으로 투석을 하고, 심장과 폐의 기능을 도와주는 치료가 하루하루 쌓여갔지만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는 속도는 더뎠다.


의사 선생님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아침, 저녁으로 중환자실에 와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방법을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환자의 상태를 더 좋아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봤지만 이미 손상된 심장의 상태를 되돌리기엔 벅차 보였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심장이식밖에 없었는데, 가족들의 동의를 얻고 빨리 이식받을 수 있는 심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초조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살아있음과 관련된 신체의 일부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오죽할까. 가족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환자의 상태는 어떠한지 수화기 너머로 물어봤다. "저번에 설명드린 것과 비슷한 상태예요." 혹은 "이번에는 어떤 수치가 높아져서 그걸 낮추려고 약을 사용하고 상태가 좋아지는지 지켜보고 있어요."라는, 가족들의 기대와는 다른 답변을 할 때마다 "어제보다 훨씬 더 좋아져서 이제 곧 회복할 것 같아요."라는 희망적인 답변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생각했다.


이식받을 심장이 나타나기까지 환자의 상태는 좋아졌다가, 또 나빠졌다가를 반복했다. 운이 좋게도(운이 좋다는 말을 쓰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이식받을 심장이 생겼다는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타인에게 장기를 선물해주신 환자분과 가족분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환자분의 심장 이식 수술 날짜가 잡히게 되었고 심장 이식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심장 이식 전 검사가 진행되는 한편 수술 후 치료받을 공간에 물품을 채우고 소독도 여러 번 시행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제 환자분은 수술을 잘 받고 회복만 잘되면 됐다. 그러면 됐다. 다른 병원에서 심장을 공수해올 동안 환자분은 수술방에서 심장을 이식받을 준비를 했다. 촌각을 다투며 심장이식 수술이 진행되었고 수술이 끝나갈 즈음 중환자실에 연락이 와서 무슨 약을 쓰고 있는지, 인계 사항은 무엇인지 알려줬다. 근데 사용하고 있는 약물 종류와 혈액을 많이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선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여러 장기의 손상이 심해졌던 탓이었을까.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입실한  환자의 혈압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혈압을 올려주는 약물을 사용하는 동시에 수혈을 진행했다. 혈액을 줄 수 있는 3개의 정맥관에 간호사 3명이 각각 달라붙어 말 그대로 피를 짜내기 시작했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혈압과 어떻게든 혈압을 올려보려는 의료진 간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수혈을 하면 수혈한 만큼 출혈이 계속되고 다시 수혈을 하고 다시 출혈이 되고를 반복하다 보니 조금 과장된 표현으로 병원에 있는 피는 다 끌어다 쓴 것 같았다.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날 밤은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너무 긴박한 상황이 이어진 밤 근무여서 그랬는지 집에 가서는 기절해버렸다.


다음 날 출근해보니 환자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아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어젯밤에도 밤을 새우며 환자 곁을 지키셨는데 오늘도 여전히 환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환자분은 점점 우리 곁을 떠나려는 듯 보였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맥박과 혈압이 점점 떨어지며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새벽에 보호자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하고선 한 손으로 머리를 쥔 채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울컥했다. 이미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현장을 지켰던 시간들을 옆에서 보고 함께했기에, 그리고 살리고 싶었던 환자분을 더 이상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선언해야 하는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조금이나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이 고개 숙인 새벽의 느낌은 아프고, 슬프고, 차가웠다.


가족분들은 그동안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음을 알았기에 비난하지 않았다. 다만 소중한 사람을 이제 보내주어야 한다는 슬픔에 오열하며 환자분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의사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환자와 보호자 곁을 지키며 슬픔을 함께 했다. 그렇게 새벽은 지나갔다.


모두가 고개를 숙였던 새벽이 무색하게도 이어진 아침에는 새 삶을 위해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분들과 수술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회복하고 있는 환자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는 살아서 돌아가고 누군가는 삶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중환자실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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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17 08: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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