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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이효림 ]




단어의 속임수 : 프레이밍 효과 



‘사람들은 똑같은 내용을 보고도 각자 다르게 판단한다.’는 명제는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특정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성향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컵에 물이 절반 정도 차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낙천주의자들은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반면, 비관주의자들은 ‘물이 반밖에 안 남았잖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사람임에도 똑같은 내용을 보고도 다르게 판단하기도 한다.’는 명제는 어떠한가. 인간의 완전한 합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당 명제가 참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같은 기호를 가진 사람의 선택은 내용이 동일하다면 절대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내용임에도 표현되는 방식에 따라 한 사람의 선택이나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상황이나 문제를 표현하는 방법을 ‘프레임’이라 부르는데, 이러한 프레임이 달라져 판단이나 선택이 변화하는 현상을 ‘프레이밍 효과’라 부른다. 

 

프레이밍 효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실험인 트버스키와 카너먼의 ‘아시아 질병 문제’ 사례를 함께 살펴보자. 

 


미국 정부는 아시아에서 발생한 희귀병으로 600명이 사망한다고 예상, 이를 예방하기 위한 2개의 프로그램이 제안되었다. 이 중 당신은 어떤 대안을 선택할 것인가? 

 

A 200명 살린다.

B 600 모두가 살 수 있는 확률 1/3, 모두 살 수 없는 확률 2/3 

 

C 400명 죽는다.

D 모두 사망하지 않을 확률 1/3, 600명 모두 사망할 확률 2/3 



실험 결과, 참가자들의 72%는 A 안을, 28%는 B 안을 선택했다.


그러나 문제 설정은 그대로 유지하고 A와 B 대안을 각각 C와 D로 수정하자, 전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같은 참가자들임에도 불구하고 22%가 C 안을, 78%가 D 안을 선택했다.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분명 A와 C, 그리고 B와 D는 같은 프로그램이다. 왜 이렇게 선택의 결과가 상이하게 나온 것일까?

 

선택의 결과가 다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단어 선택의 차이였다. 실험대상자들은 ‘살리다’나 ‘사망하지 않을’ 확률 등 긍정적인 단어로 표현된 경우, 이익으로 받아들이지만, ‘죽다’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로 표현된 경우에는 손해, 즉 위험추구적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단어 선택뿐 아니라, 단어의 순서도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 이를 프레이밍 효과 중 하나인 ‘초깃값 효과’라 부른다. 초깃값 효과란 무엇이 초깃값(먼저 제시된 값)이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미국의 뉴저지주와 펜실베니아주의 자동차보험 선택 사례를 통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당시 뉴저지주는 싼 보험료의 보험에 자동 가입하는 것을 초기설정으로 두고 보험료를 추가하면 넓은 적용 범위의 보험으로 변경할 수 있게 했다. 이와 달리, 펜실베니아주는 비싼 보험료의 보험에 자동 가입하는 것을 초기설정으로 두고 이후에 싼 보험으로 변경할 수 있게 했다. 1992년에 가입자들의 현황에 관해 확인해본 결과, 뉴저지주의 가입자 80%는 초기설정대로 저렴한 보험을 선택했으며 펜실베니아주의 가입자 역시 75%가 초기설정인 비싼 보험을 그대로 선택하고 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즉, 가입자의 대다수가 초기에 설정된 값을 그대로 선택한 것이다.

 

 합리적 선택 이론은 동일한 문제라면 어떤 형태로 표현되더라도 선호나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불변성’을 전제로 하며, 인간이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항들을 판단해 결정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위 사례에서처럼, 인간은 단어의 선택, 단어의 순서나 초깃값에 따라 상이한 판단을 내린다. 이처럼 프레이밍 효과는 기존의 경제학이 가정하던 ‘합리성’의 한계를 지적하며 합리적 선택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해낸다. 

 

 

 


 속임수를 활용하라 !



프레이밍 효과를 활용한 사례는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기업의 팽창가격할인 표기법을 예로 들 수 있다. 



팽창가격할인이란 가격할인을 애매한 특정 범위로 제시하여 불확실성을 창출하는 기업의 판매촉진 기법으로서, 주로 최소 할인율과 최대 할인율을 함께 제시하는 방식으로 표기한다. 이때 기업은 최소 할인율과 최대 할인율을 오름차순(20-50% 할인)으로 제시하는 전략과 내림차순(50-20%)으로 제시하는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값비싼 물건의 판매율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초기에 제공된 정보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을 활용하여 ‘내림차순’ 표기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면, 기업의 가격할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처리용이성이 높은 정보를 선호한다는 경향성을 활용하여 ‘오름차순’ 표기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프레이밍 효과는 정책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크와트론과 트버스키의 정책 판단 연구에 따르면, 같은 정책임에도 실업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보다 고용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더 높은 정책 선호도를 보였다고 한다. 정부는 이러한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이 희망적으로 보이도록 긍정적인 단어들을 사용하여 정책안을 제시하는 전략을 펼친다. 

 

 


그 단어를 조심해 !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인간은 단어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간다. 같은 내용임에도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혹은 단어가 어떤 순서로 배치되어 있느냐에 따라 상이한 선택을 하는데, 이는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프레이밍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과 정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최대 이익을 줄 수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어를 유심히 보아라! 같은 말을 하면서 우리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은근슬쩍 순서를 바꾸어 우리가 초기의 선택지를 고르도록 유도하고 있는지는 아닌지 말이다.


교묘한 단어 선택과 배치로 특정한 행동을 부추기는 속임수에 유의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합리적인 선택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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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도모노 노리오. 이병희 옮김. (2007). <행동경제학 : 경제를 움직이는 인간 심리의 모든 것>. 지형. 159-167

수세나 아르가시. (2022). 20%-50% 할인은 50%-20% 할인과 다른가? : 팽창가격할인의 프레이밍 효과. 한국마케팅학회. 37(3). 

오승연. (2015). 포커스 : 행동경제학 개념의 보험 적용 사례와 활용방안. 보험연구원. 340(0).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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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2-03 23: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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