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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윤소영 ]



노자의 『도덕경』 12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다섯 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음은 사람의 귀를 멀게 하고

다섯 맛은 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전혀 다른 맥락을 띈다. 무엇보다 화려한 삶, 맛있는 음식, 고급스러운 문화생활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행복’이자 ‘가치’는 무엇보다 ‘부’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의 철학자 노자는 화려함이 우리를 망친다고 주장했다. 행복을 목표로 삼고 도달하기 보다는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무색무취’의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미(無味)


서양철학에서는 무지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여정으로서의 앎을 중시했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행복이 부여된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시선의 전환’, 즉 앎을 매개로 영혼의 변화가 수행되고,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앎 자체가 아닌, ‘무미건조(無味乾燥)’, 즉 평범한 일상 가운데 존재하는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또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무미(無味)의 긍정성을 통해 이루어지며, 행복을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도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일상 속에서 ‘늘 내재하는 것’으로서 보는 데 있다. 우리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상이 곧 행복임을 알면, 삶을 보다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무미(無味)는 일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서, 흥미로운 점이나 이로운 점이 전혀 없는 속성을 나타낸다. 이는 미각, 시각, 청각 다양한 감각 속에서 서로 대립되는 것도 없고, 조화를 이루는 것도 없이, 그저 단조롭고, 희미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무미는 곧 고갈될 줄 모르고 지칠 줄 모르는 풍미기도 하다. 예를 들면 우리가 늘 마시고 주식으로 먹는 물이나 밥의 질림이 없는 것, 선이나 점으로 되어 있는 그림의 간결함에서 볼 수 있는 숭고함, 그리고 악기와 목소리의 단순한 음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등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무미가 풍부함의 근원이 되고, 소중한 가치가 된다.


심리적으로 보는 무미의 가치


즉 무미는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철학적인 의미로서 무미가, 우리의 심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알아볼 차례다. 무미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르게 사유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공’으로부터 행복을 찾기 때문에, 어떤 목적을 도달하기 위해 성공을 지향한다. 그러나 다르게 사유하다면, 즉 시선의 전환이라는 철학적 관점으로서 다르게 일상을 바라본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시선의 전환이라 함은, 평범하고 단조롭고 단순한 것들로부터, 묻혀있던 아름다움이나 이로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성공’을 ‘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돈’이라는 가치를 위해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 가치만이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목표만을 보며 노력하고, 지식을 쌓고, 앎을 추구한다. 이 과정속에서 행복은 없다. 이 사람은 행복이라는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것이지, 나아가는 데서 느끼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라는 물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명예’를 쫓는 사람, ‘관계’를 좇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목표로의 도달이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무미의 가치를 아는 사람, 즉 평범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항상 행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매 순간을 사랑하고,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미의 무한한 풍부함과, 평범함에서 비롯되는 가능성을 본다. 그에게는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이 구별되지 않는다. 주어진 현실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고, 변형시키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조화롭게 꾸려나갈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비관하지 않을 수 있고, 항상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 모든 사물에 대해 그냥 지나치기 보다는 항상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행함 없는 행함’을 통해 상황을 자신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결론


자신의 목표가 뚜렷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목표만이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목표는 단순히 목표일 뿐,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나의 삶 그 자체이며,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모든 순간들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행복을 찾는 여정은 기대되고 설레겠지만, 막상 그 길 끝에 서 있는 것은 허무함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내 삶을 일직선으로 여기면 쉽게 우울해진다. 끝이 있는 마라톤이 아닌, 고갈될 줄 모르고 지칠 줄 모르는 ‘무미’로서의 인생이 오늘도 새롭게 시작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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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상림(Kang, Sang-Rim). (2009). 무미와 행복. 철학과 문화, 18(), 145-163

서세영(Se-Young, Seo). (2010). 무미(無味)의 이해 방식에 관하여. 철학과 문화, 21(), 95-123. 

노자, 도덕경 12장 ;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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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2-28 16: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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