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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양다연 ]


출처: pixabay(https://pixabay.com/photos/moon-sky-luna-craters-lunar-1527501/)

수능과 모의고사에 출제되는 작품들은 매번 다르지만 그 모든 작품들을 아우르는 '불변의 법칙' 같은 것은 있다. 그 내용이 교육적이어야 하고, 사교육에 들어간 돈으로 집 몇 채를 살 수 있는 아이부터 학원 구경 한 번 해보지 못한 아이까지, 모든 학생들이 비슷한 사고를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다. (실제로 이것이 지켜지고 있는지,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국어 과목의 문학작품에만 해당되는 좁은 의미의 '불변의 법칙'도 있다. 예외가 없지는 않으나 그것들은 말 그대로 '예외'여서 문제 안의 <보기>를 통해 설명이 되어있다. '어머니', '임', '고향' 등의 단어는, 이를테면 그리움이나 사랑같은 애틋하면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반대로 '간다', '버리다', '떠나다'와 같은 단어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대부분은 부정적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한민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국어영역 문학 작품에 한해서는 진리다.


나는 문학 작품 중에서도 특히 고전 작품이 이 '불변의 법칙'에 많이 매인다고 생각한다. 고전 작품은 현대어로 제시되지 않아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게 그 이유일 것이다. 역시나 학생들은 고전 작품을 배우기 시작할 때 많이 어려워한다. '무슨 내용인지 단 한 줄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문제를 어떻게 푸냐'는 것이 내가 가르치는 과외생 대다수가 한 번씩은 하고 넘어가는 질문 내지는 불평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해'와 '구름'으로 예를 들어 대답 내지는 해명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는 임금, '구름'은 장애물이다. 대부분의 구성은 이렇다. 유배를 당해 외딴 섬에 살고 있는 한 사대부가 있다. 할 것이라고는 끼니 해결과 산책 말고는 집에 돌아와 먹을 갈고 글을 쓰는 것 뿐이다. 붓을 잡은 사대부는 시가 되었든 노래가 되었든 책이 되었든 간에 무언가를 써내려간다. 그 내용은 대략적으로 '산에 올라가 해를 보고자 하였는데 구름이 앞을 가리오니 애통하고 슬프기 짝이없도다' 같은 것이다. '해'에 임금을 대입해보면, '나는 멀리 계신 임금을 보기 위해 굳이굳이 높은 산 꼭대기에까지 올라왔는데 내 눈 앞을 구름이 가리니 구름은 당신의 생각을 막는 못된 놈이 아닐 수 없다'는 뜻이다. 추가로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과 그리움이 내가 오른 이 산의 크기만하다는 의미도 있겠다. (그러니 하루 빨리 이 섬에서 꺼내달라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이를 들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 그냥 외워야겠네요" 하고 넘어간다. 간혹가다 내키지 않는 표정과 뉘앙스로 알겠다고 억지 웃음을 짓는 친구들도 있다. 한숨은 덤이다. '불변의 법칙'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대학을 가기 좋은 방법은 아니나, 그래도 그런 친구들에게 평가원의 의도를 설명하는 과정은 나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나도 한때는 해와 구름을 보고 임금이며 장애물이며 하는 것이 굉장히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볼 때마다 항상 하는 생각 두 가지가 있다. '항상'이라고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면 결단코 10번 중 8번 정도는 이 생각을 한다고 말해야겠다. 첫째, '아름답다.' 둘째, '달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달이 아름답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거니 생각하고 두 번째 생각에 대한 이유를 말하고 싶다. (달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듣고싶다. 온전한 궁금증에서 비롯한 질문이다.) 후자의 이유는 조금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유들 뿐이라 글이 조금은 구차해질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달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해와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내가 하는 생각이다. 그 이유들은 얼핏 보면 나사 빠진 실없는 소리같지만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다.


첫째, 달은 겸손하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고개를 떨구지 않기 때문이다. 한여름 정오에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는 해를 마음껏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그렇다면 기네스북에 '해를 가장 오래 쳐다본 사람'으로 등재되거나 "포브스 선정 '해와 가장 오래 눈을 맞춘 사람 1위'"로 불리는 명예를 얻을지는 몰라도, 두 눈은 잃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달은 소리소문 없이 떠올라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 한해서는 매우 자비롭다. 넑을 놓고 쳐다봐도 새침하게 "뭘봐" 같은 대답으로 고개를 떨구게 하지 않는 것이 달이 겸손한 증거다. 


둘째, 달은 공존한다.

아이들은 별이 아침에도 빛난다는 사실을 믿을까. 나의 얕은 지식에 의하면 지구에서 보이는 별은 아주 오래 전에 죽은 별이라고 한다. 우주에 그 상태로 머무는 별은, 따라서 아침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마련이다. 아침이 어두웠다면 볼 수 있었을 별은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그제서야 나타난다. 모순인 것은 아주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것은 달인데, 그 밝은 달이 또 다른 별을 밝힐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해도 밝기는 마찬가지인데 달은 해와는 다르게 다른 빛과 공존하며 빛나는 법을 안다.


셋째, 달은 밀당한다.

먹구름 가득한 날이 아니면 해가 없는 아침 하늘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오늘로 5일째 달이 뜨지 않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다. 강아지가 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거릴 동안 밤하늘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나는 '오늘도 안 보이네'하며 '이런저런'의 시작과 끝을 달로 장식한다. 사이코패스임이 분명한 해는 매일 아침 시끄럽게 찾아와 곤히 잠든 전국의 학생과 직장인, 길거리의 동식물을 깨우며 "내가 왔노라"하고 외치지만, 오늘 떠도 내일 없는 것이 달이다. 분명히 뜨긴 했을텐데, 보이지 않는다. 마치 '369 법칙'을 철저히 지키는 썸남같다. '하루에 3번 이상 문자 보내지 않는다. 답장은 6분 이내에 하지 않는다. 저녁 9시 이후의 문자는 씹는다.' 분명히 안 자고 있을텐데, 답장을 안 한다.


넷째, 달은 인간적이다.

아이폰이 업데이트 되면서 잠금화면에 설정할 수 있는 기능들이 여럿 추가됐다. 그 중 하나는 오늘 달의 모양을 알려주는 기능인데, 최근에는 계속 '하현망간의 달'이 뜨고 있다. 보름달이 되기에는 오른쪽 부분이 검은 달이다. 달의 모양이 바뀐다는 것이야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요즘은 이렇게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달이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결같이 동그란 해와는 다르게 매일밤 모양을 달리하는 것이 마치 이랬다저랬다 마음을 바꾸는 사람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쩌면 고전 문학의 '해'가 임금인 것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겠구나 싶다. 나라님에게 겸손이 요구되었을 것 같지는 않고, 임금이 공존이며 밀당이며 하는 것을 했을 것 같지도 않고, 인간적인 존재가 될래야 남들이 그렇게 모시지도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달이 좋다. 굳이 싫어해야 할 이유까진 없지만, 같은 이유로 해는 싫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작열하는 해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니고, 따스한 햇살을 좋아하긴 하지만 결코 그늘을 마다하지 않는다. 달은 겸손하고, 공존하고, 밀당하고, 인간적이기까지 하니 임금의 자리에 어울리는 몸은 아니다. 과연, 달의 관상을 보노라면 왕이 될 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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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16 19: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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