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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신치 ]


난중일기로 보는 이순신의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사회생활 15년 차에 접어들었다. 어제는 마케팅팀 직원들끼리 회식이 있었다. 얼마 전 퇴사한 직원의 퇴사 축하 자리이기도 했다. 직장 상사에 대한 성토대회가 이어졌다. 회사에서 최고의 복지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란 말이 실감되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상사를 거쳐왔다. 그중에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아직 연락하면서 가뭄에 콩 나듯 얼굴도 보는 사람도 있다. 기억에 남는 상사는 잠시 몸담았던 공기업에서 비서로 만난 감사였다.


#감사와의 첫 만남

다른 부서에서 계약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에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감사님 비서로 일해볼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하기로 결정하고 내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비서 업무가 시작되었다.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부사장 비서에게 기본적인 키폰 사용법부터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고 드디어 내가 모시는 임원과의 첫 대면을 하게 된다. 마주하자마자 대구 출신의 임원은 내게 질문을 시작했다.


“대구 어디 나왔노?”

“네? 아… 저 ㄱㅁ여고요”

“ㄱㅁ여고? ㄱㅁ여고가 어디고?”

“칠성시장 근처에요.”

“그래? 집은 어디고?”

“집은 경북대 근처에 있다가, 지금은 서울로 다 이사 왔습니다.”

“그래? 비서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잘 할 수 있겠나?”

“네, 열심히 해야죠.”

“회사는 오래 못 다니고 여러 번 옮겼네?”

“아… 보험회사에 오래 있었고요. 벤처기업이랑 작은 회사에 잠깐 있었습니다. 비서 일도 나중에 사업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하게 된 거예요."

“그래? 사업하려고? 열심히 한번 해 봐라. 많이 배우는 게 있을 거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자그마한 키에 안경을 쓰고, 대구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임원은 대구 출신이라는 것과 사업을 하려고 하는 나의 포부가 꽤 맘에 들었나 보다. 이후에 대구 친구인 외부 손님이 왔을 때도,


“야가 대구 아인데 나중에 사업하려고 비서하게 됐다.”


라며 나름 자랑스럽게 나를 소개했다.


# 그 많던 비서들은 다 어디 갔을까

연말 카드 보내기와 연말정산 등 복잡한 일들은 이미 이전에 비서들이 일처리를 다한 후라 내가 갔을 때는 바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임원의 일정관리, 차 서빙, 개인 은행 업무 등 잡다한 업무들을 하나씩 배워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다. 예를 들면, 비서실 대장 언니가 밥을 사주면서


“밥만 사주면 애들이 다 나가. 이번에도 나가는 건 아니겠지?”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임원과 함께 비서를 1년 2개월간 했던 사람이 나간 후 한 달 동안 4명의 비서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나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일을 하러 왔던 비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임원의 태도가 문제였다. 물론 다른 회사의 비서보다 일은 많고 월급이 적은 것도 한몫한 것 같지만.


수행비서가 있는 사장님을 부러워한 임원은 비서에게 수행비서의 역할을 원했다. 감사가 출근하면 1층에서 전화가 온다.


"감사님 올라가십니다"


그러면 비서는 엘리베이터 앞에 나가 감사를 기다린다. 그리고 감사님을 보좌하며 감사실까지 모시고 온다. 그리고 감사님의 재킷을 받아 옷걸이 걸어준다. 나중에 부사장 비서에게 들어보니 감사의 이런 요청에 비서학과 출신의 비서들은 학교에서 배워본 적 없는 몹쓸 비서 업무에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게다가 임원 옷의 단추 달기, 통장 정리, 하루 4번 차 대접하기, 아파트 관리비 내주기, 주말에 대구 다녀온 기차 티켓 정산하기 등 다른 임원들은 시키지 않는 개인적인 업무를 많이 시킨다는 것도 비서들을 내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다행인 건 내가 갔을 때는 이미 4명의 비서를 내보낸 뒤라 나에게는 그전의 비서들에게 했던 것들을 함부로 시키지 못했다.


# 이 비서는 왜 이럴까

임원이 이전 비서들에게 했던 것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비서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비서들처럼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비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비서는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휴가를 쓸 수가 없다. 임원이 쉴 때만 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비서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중요한 개인 일정 때문에 휴가를 쓰겠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비서 2주 차에 이틀의 휴가를 냈다. 그리고 임원이 퇴근한 후에야 퇴근할 수 있는데, 휴가를 떠나기 이틀 전에는 오후 4시에 조기 퇴근을 했다. 무엇보다 비서는 임원보다 일찍 출근해 신문과 물, 그리고 물 잔, 가습기 세팅 등을 해두어야 한다. 그런데 처음 2주 동안 무려 세 번이나 지각을 해 버렸다. 이런 나를 보며 비서실 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처음 지각한 날 마주 보고 있는 부사장의 비서가 내게 말했다.


"언니, 저 언니 같은 비서 처음 봐요."


이 한마디에서 볼 수 있듯이 나는 이미 비서계의 이단아가 되어 있었다. 임원의 무리한 요구까지 모든 것을 들어주었다는 첫 번째 비서의 이야기와 앞서 4명의 비서들이 나간 이유를 들으니,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임원이 내게 본인의 개인 통장을 건네주며 돈을 찾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기꺼운 마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 돈을 찾았는데, 통장을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은행 문이 닫힌 후였고, 통장을 바꾸려면 신분증이 필요하기에 임원실로 돌아갔다. 통장을 바꾸셔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뒤지며 얘기를 한다.


“1층에 담당 여직원이 있는데 말이야. 올라와서 처리를 좀 하라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 자기 통장을 바꾸는데, 은행 직원이 임원실까지 왔다 가라는 것인가? 순간 당황스러움이 밀려온다. 옆방의 부사장 비서도 자기 비서처럼 부리더니 이제는 은행 직원까지 자기 비서처럼 시키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납득할만한 일인가? 왠지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감사가 은행 직원의 전화번호를 찾고 있는 5분간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임원에게


“내일 점심 드시고 들어오시는 길에 은행에 잠깐 들리세요. 5분이면 되실 거예요. 5분도 안 걸릴걸요?“


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임원은 순간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마지못해


“어 그래? 그러면 그럴까?”

“네, 그러세요~~!!!”


그리고 뒤돌아 휙 나와버렸다. 비서로서 해야 할 의무는 다하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임원의 요구에는 산뜻하게 방어벽을 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실천했다. 임원도 나도 서로에게 익숙해지려 했는데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비서 업무를 그만두게 되었다. 마지막 근무하는 날 임원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면서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사람에게서 구하라, <난중일기>에서 찾은 사람을 얻는 법



감사님. 한 달 짧은 시간이지만, 제 생에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비서 일하면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편안하게 못 모신 것 같아서 죄송하고요..;;

참, 감사님~ 주변 사람들(임원님들, 비서실, 감사실 식구 등등)에게 감사님 비서를 많이 칭찬해 주세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요~!ㅋ 그리고 혹시 비서에 대해 못마땅한 점이 생기면 비서에게 직접 얘기해 주세요. 당장은 쓴 약일 테지만, 비서가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될 테니까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빌겠습니다.



라는 편지를 정성껏 쓴 구본형 선생님의 <사람에게서 구하라>는 책을 드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감사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너는 잘 될 것 같다. 돈도 많이 벌 것 같고. 가서 열심히 하고, 나중에 잘 되면 나 모른척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내게 흰 봉투를 건네신다.


“어머니, 고기라도 사다 드려라~”




사람들은 누구나 매력적인 사람이길 원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매력을 어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그의 가족과 많은 동료들로부터 존경받고 인정받는 꽤 매력적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지금 이순신이 살아 있다면, 하루 종일 그의 휴대전화는 그를 찾는 이들로 쉴 새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일기에서 찾아낸 이순신이 사람을 얻는 법은 무엇일까?


1. 공감할 수 있는 원칙주의자


이순신은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놓고, 그에 따라 모든 판단을 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난중일기>에서 유난히 많이 나오는 내용이 “약속”에 대한 것인데, 약속을 지키지 않은 병사들에 대해 징계를 했다는 내용이 많다. 아마 ‘약속을 지키는 것’은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누구와 약속을 하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약속에 대해 특히 엄격했던 그였기에 본인 스스로 한 약속도 잘 지켰을 것이다.


예전 회사는 동종업계의 타사들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곳이다. 그리고 우리 팀을 이끌었던 리더도 그 원칙을 어느 누구보다 잘 지키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한편으로는 원칙을 너무 잘 지키는 사람을 봤을 때, 답답하고 유연성도 없으며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원칙이 깨져 긴박하고 치명적인 순간을 경험하면 원칙을 잘 지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원칙이 깨지기 시작할 때 원칙을 중시하는 리더가 이끌어 오던 팀이 와해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반면, 원칙을 잘 지키되, 사람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그것이 아집으로 연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삶에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다를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나의 원칙만’을 고집하고 무조건적으로 타인의 원칙을 배척하기보다, 충분히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팀 내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순신이 내세운 '약속을 잘 지킨다'라는 원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2. 솔선수범의 자세


원칙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이다. 상하관계가 뚜렷한 군대에서 수많은 군사들을 이끄는 리더가 ‘말’만 하는 사람인지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람인지는 그를 진심으로 따를 수 있게 하느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행동’은 그와 반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따를 사람은 없다. 이런 면에서 술을 마셔도, 사람을 만나도,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거의 매일 활쏘기를 연습했던 이순신의 모습은 언제 왜적이 쳐들어 올지 모르는 전쟁이란 상황에서 장수들과 군사들에게 ‘언제 어느 때든 전쟁의 실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무엇인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행동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난중일기>를 읽으며 놀랐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순신 장군 스스로 소금 굽는 가마솥을 만들었다는 부분과 메주를 만들어서 온돌에 넣었다는 부분이다. 큰 군사를 통솔하던 통제사가 가마솥을 굽고 메주를 만드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이런 부분을 보면, 이순신이란 사람은 분명히 자신이 병사들에게 시키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든 먼저 해 보고 그에 대한 지식들-일을 하는 방법, 성공하는 법,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처럼 무슨 일을 하든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그를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남에게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 시키는 일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꽤 중요하다. 알고 있어야, 정확하게 지시할 수 있고, 일을 진행하고 마무리를 하는 과정에서 확인하고 수정 또는 보완을 할 수 있으며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고, 잘 된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 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배울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더불어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도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다.


3. 겸손함.


초고속 진급을 했던 이순신. 이는 주변 이들의 추천과 왕으로부터의 큰 신임을 얻어서 가능했다. 그리고 그들이 추천하고 신임했던 이유는 이순신 스스로가 훌륭한 업적들로 ‘스스로의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치고, 장수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티끌만 한 공로도 바치지 못하였으니, 입으로는 교서를 외고 있으나 군사를 거느리기에는 스스로 부끄러울 뿐.(난중일기 중, p233)



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특히 이런 고백이 일기-아무도 보지 않는-에 적혀 있다는 것은 이 마음이 진심임을 알 수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데, 사람 중에는 높은 자리로 올라가 많은 것을 가질수록 고개가 하늘 높은지 치솟는 이들이 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오만함으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오만함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주변에는 진심으로 충고하고 위해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다. 이런 면에서 이순신은 진심으로 스스로가 이룬 업적들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기보다 함께 한 이들에게 돌릴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4. 적절한 보상


이순신이 지닌 겸손함의 미덕은 나눔으로 이어진다.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바지는 여러 공물들을 타 지역의 장수들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는 오수가 잡은 청어 3백 60두릅을 여러 곳의 공문을 처리하여 나눠 보낸 것, 항복한 왜인을 데리고 온 김탁 등의 장수들에게 무명 한 필씩을 주어 보낸 사례가 말해주듯 그는 자신에게 온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업적을 이룬 장수의 공을 인정하고, 그에 적절한 보상을 할 줄 아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또한 군사들 중 힘센 사람을 뽑아 씨름을 시키고, 그중 가장 뛰어난 자에게 상으로 쌀 한 말을 주고, 늦은 저녁 음식을 풀어 군사들에게 먹였다는 일화에서도 적절한 보상으로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음을 이순신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인정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일이나 업무에 대한 활력이나 열정을 금세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이순신이 행했던 적절한 시점에 이루어졌던 인정과 적절한 보상은 충분히 배울 만하다.


5. 인간 존중


이순신은 지위 고하를 따지기 전에 인간임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다. 바람이 거칠게 부는 밤 종 금이를 본영으로 보내놓고, 날씨 때문에 종의 안위를 염려하는 모습에서는 왠지 조선 시대를 다룬 영화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듯 종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양반들과는 달리 그를 종으로써 가 아닌 사람으로서 대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또 어느 날 저녁 항복한 왜인들이 광대놀이를 벌이는 장면을 보고 적의 장수로써 그냥 두고 볼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마당 놀음 한 번 하기를 간절히 바래서 금하지 않았다고 하는 대목은 적군까지 감싸줄 줄 아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아침에 본인을 보러 찾아온 이방에게 밥을 먹여 보낸 모습에서도, 길을 떠나는 중 피난민들로 가득 찬 길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부축해 가는 모습을 눈뜨고 차마 볼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모습에서도 어떤 누구에게든 인간적인 애정을 가지고 대하는 그의 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사회적 위치와 지위적으로 아무리 상하 관계에 위치하더라도 사람 간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간혹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얼마 전 아파트 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다 죽음을 선택한 경비 노동자로 인해 최소한의 생활비도 못 받고 있고, 일하다가 맘 편히 쉴 곳조차 없는 노동환경에 대해 이슈가 되고 있다. 흔히 사회적으로 잘난 사람들 중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들도 천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이렇게 대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을 당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욕적으로 느낀다.


점점 사람이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시대에 이순신이 보여주는 인간존중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았던 이순신은 본인이 타인으로부터 받는 것들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감사하게 여길 줄 알았다. 옥살이를 마치고 백의종군하여 서울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들에 대해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일기에 직접적으로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어머님이 평안하게 계신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족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적어 놓은 일기에 그의 감사하고 있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이것은 함께 힘든 상황을 잘 버텨주고 있는 군사들과 장수들에게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때로 주위를 둘러보면 본인이 부탁을 했건, 받을 만한 일을 했든지 간에 자기가 받은 것에 대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해준 것보다 더 바라는 사람도 있다. 더 바라는 부분에 대해 받지 못하면 화를 내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떠나게 된다. 비록 몸은 떠나지 못할지라도, 마음은 이미 떠나가고 있다.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 같지만, 이 마음 하나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살았던 이순신의 곁에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당쟁의 희생양으로 옥살이를 하고 서울에서 도원수 권율 진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간 동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위로해 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여비까지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 정말 잘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강했기 때문에 동료들 간에는 이순신이 직언을 하면, 그 직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우수사에게 잘못된 점을 말하였더니 우수사는 모든 것을 사과했던 일화-도 있었다.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자식들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에게까지 인정받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이었다. 그를 비판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아마 높은 지위를 가진 그가 왕에게 신임을 받는 것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신임 받고 있는 것을 더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권력과 지위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만은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얻는 법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이 전해져야 한다. 이순신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매 순간 그의 진심을 담아 사람을 대했기에 그의 마음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이들이 이순신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이순신이 사람을 얻은 방법 외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은 나를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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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31 14: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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