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
[The Psychology Times=신치 ]
영업을 하던 시절에 지인의 소개로 영화 소모임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다. 어느 영화평론가가 운영하던 곳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모임이었는데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멤버의 구성원이었다.
이 모임 사람들의 특징은 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음악, 여행 등도 좋아해 시즌마다 있는 각종 음악 페스티벌과 영화제 등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는 만큼 본 영화도 많고,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어 어떤 주제가 나와도 티키타카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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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모임에 참여하는 그 순간부터 너무나 괴로웠다. 이때는 책을 많이 읽던 시기도 아니어서, 책 이야기에도 낄 수가 없었는데. 워낙 어릴 때부터 문화활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기에 모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주제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무슨 영화를 얘기해도 본 것이 없고, 음악도 전혀 모르고, 심지어 보거나 한 번쯤 들은 것이라 해도 나는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기억을 잘 못했다. 마치 안면인식장애처럼 영화 인식장애와 음악인식장애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외국 영화와 음악에 대해서는 더욱 그 정도가 심했다.
당시는 영업할 대상의 하나로 보고 있었기에 모임에 빠짐없이 나갔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즐겁고 신나야 하는 모임이 점차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 정말 많이 생각한 게
'나는 왜 이렇게 영화나 음악 등 예술 분야에 관심이 없을까? 나도 저 사람들처럼 읽는 족족, 보는 족족 잘 기억하고 그것들을 잘 연결해서 술술 막힘없이 얘기해 보고 싶다'
하는 부러운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 전과 후에 물질의 모든 질량은 항상 일정하다는 질량보존의 원칙, 평생 마실 술의 양은 정해져 있어 젊은 시절에 많이 마시면 나이 들어 많이 마시지 못한다는 주량 보존의 법칙(?) 같은 이론(?)들처럼 재미에도 재미량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같은 재미량을 가지는데 그 재미를 쓰는 분야가 개개인별로 다른 것이다.
우리 엄마는 테니스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다. 30여 년 이상 테니스를 치고 있다. 아마 엄마가 가진 재미량의 비율을 나타내라고 한다면 테니스:당구(얼마 전부터 당구에 심취해 계시다):그림:뮤지컬 = 85:10:3:2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재미를 느껴도 그것이 끈기 있게 오래가지를 않았다. 지금 나의 재미량을 보면 명상:책과 글쓰기:실험=90:8:2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또 어떤 사람은 여행이 80~90%를 차지하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는 것에서 대부분의 재미를 느끼는 사람, 연애나 섹스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 혹은 연구와 공부에 가장 큰 재미를 느끼는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까지 각자가 가진 재미량이 쓰이는 분야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이러니 내가 영화나 음악 등의 분야에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왜 저 사람들과 달리 음악이나 영화 등의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까'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심지어 명상을 하기 전이라 내가 어떤 분야에 재미를 느끼는지 잘 모르고 있었을 뿐, 내 인생에도 재미량보존의 법칙이 성립하는 거였다. 나만의 재미를 찾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혹 나처럼 '도대체 나는 어디에 관심이 있는 걸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걱정 마시길. 언젠가는 그대도 그대만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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