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나
[The Psychology Times=박지나 ]
트라우마는 두 가지의 모습이 있어요.
1.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
2.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받지 못해 생긴 트라우마
트라우마라고 하면 PTSD를 함께 떠올리며 외상 충격, 공포, 공격 등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생각하지만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들을 마땅하게 누리지 못했을 때 또한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학교폭력을 주제로 만든 드라마 ‘더 글로리’가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받고 있죠
드라마의 주인공인 동은이는 가해자들로부터 받은 폭력이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사실 마땅히 누려야 하는 원활한 학교생활을 누리지 못한 부분에 대한 부분, 보호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로부터 외면을 받고, 담임선생님과 경찰, 학교의 보호를 받지 못한 부분 역시 트라우마로 남아 살아가면서 관계에 대한 외적/내적 갈등과 고통을 안게 돼요.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 폭력에 남은 상처를 치료하고, 심리 상담을 받는 등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하지만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받지 못한 상처는 ‘서러움, 억울함’으로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은 외적 사건 해결, 치료, 가해자의 진심 어린 심리적, 물리적 보상을 해주면 끝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2차 가해를 합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얼마나 더 사과를 해야 하니?”
상처받은 사람들이 원하는 사과는 1. 외상적 상처에 대한 사과뿐만 아니라 2. 마땅히 내가 누려야 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진심의 사과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상처받은 사람들도 알아요. 하지만 희망을 기대하고 꿈꿨던 시간들을 어느 날 갑자기 짓밟히고 빼앗긴 그 감정을 무엇으로 보상받고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고작 한 두 번의 사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주말 나들이를 가기로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나들이 가는 날만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냈어요. 전날엔 잠도 오지 않고, 당일은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나들이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바로 직전, 아버지께서 일이 생겼다며 나들이 취소를 합니다. 아이에겐 그저 나들이 취소가 아니라 일주일 동안 기대하고 기다렸던 시간에 대한 박탈감이 함께 들어요. 하지만 부모님들은 ‘나들이 가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에 가자’라며 오늘 못한 일을 다음으로 미루고 새로운 약속을 해요. 오늘 함께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한 사과도,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도 했지만 아니는 괜찮지 않아요. 일주일 동안의 그 기다림과 기대는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지 못했거든요. 이런 일들이 반복됐을 때 아이는 더 이상 부모님과 약속을 하지 않고, ‘다음에’라는 말보다 ‘지금 당장, 당장 해줘’라고 약속을 하지 않게 됩니다. 나아가 사람들과의 약속 또한 믿지 못하는 약속에 대해서, 어쩔 수 없는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일이 미뤄지는 것들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가 있어요.
오랜 시간 학교폭력을 당했던 어른이 있습니다.
집단 조직에서 적응을 못하고 혼자 떨어져 지내곤 해요. 겉으로 보기엔 학교폭력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상처도 보이지 않게 훌쩍 자랐어요. 이미 지나간 일이고, 가해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몰라요. 더 이상 이 피해자를 괴롭히지 않아요. 하지만 이 어른은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 곳, 집단이 이뤄지는 곳은 가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문득 슬픔이 밀려 올라와요. 이유는 모르지만 사람 들고 함께 있다가 집에 와서 혼자 있으면 그 시간이 견디기 힘들 만큼 마음이 시리고 눈물이 나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어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다 해결됐고, 해소가 됐다고 생각한 학교폭력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어 힘들게 해요. 친구들과 즐겁게 등하교를 하고, 신나고 즐겁게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던 과거가 자꾸 떠올라요. 과거 떠오르면 가해자들과 방관자들이 함께 떠올라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시간을 보내고 난 후의 후유증이 더 커져서 관계를 멀리하게 돼요.
이미 지난 일인데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시의 약한 피해자가 아닌데
왜 여전히 그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자신을 자책하게 되고...
트라우마는 외적 사건, 상처를 치유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당시 마땅히 누려야 함을 누리지 못한 그 마음을 꼭 알아주고 안아주는 것 또한 중요해요.
내가 바라고 꿈꿔온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서럽고 억울함 마음, 자의가 아닌 타의로 좌절되었던 그 참담함과 분노 그로 넘쳐 오르는 아픔과 슬픔..
그 마음들을 함께 마주하며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피해자들이 말하는 진심 어린 사과는
가해자들의 행위를 포함한
무방비 상태로 빼앗긴 너무나 평범한 일상과 그 안의 소중한 희망들이 부서진 것에 대한 사과일 거예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사과를 받고, 외적인 사건은 해결이 다 됐는데도 여전히 그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있다면 ‘나는 왜?’라고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마땅히 누려야 하는 그 시간과 내가 기대하고 꿈꿨던 정말 소중한 내 삶의 일부인 부분들이 상처받고 좌절되어 슬퍼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주길 바라요.
사건 해결에 급급해 상처받은 자신을 혼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가해자를 미워하느라 아픈 자신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너무 큰 사건, 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해 상처받은 자신 또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알아봐 주길 바라요.
외적인 상처가 아물고, 여러 번의 사과를 받고, 수십 번 외부의 위로를 받았다고 해도
우리 자신은 세상 누구의 위로와 사과보다 나 자신의 지지와 격려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하게 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요.
:) 여러분은 상처를 마주하는 자신들만의 방법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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