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
[The Psychology Times=신치 ]
며칠 전 페이스북에 '집에 버려야 하는(?) PC 본체 있는 분 저한테 버려주세요! 물론 하드는 있는 걸루요.ㅋㅋ.'라고 올렸더니 우리 집에 정말 버릴 물건이 있다고 친구가 댓글을 달아주었다. 마침 어제 1년 전쯤에 본 그 친구네 집에 가서 컴퓨터 본체 한 대를 받아왔다. 가면서 '집에 처음 가는데 뭐라도 하나 사가야 할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빈 손으로 가서 컴퓨터 본체와 함께 참기름, 밀가루 등을 담아 내 손목에 걸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말끝을 흐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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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뭐라도 사 오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라고 말하고 말았다.
오늘 아침 지인과 통화할 일이 생겨서 원래 목적의 통화를 하고 곧 퇴사하게 되었다는 근황을 전하다가 직장을 구하고 있는 지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회사에 와서 일 하라'고 얘기다. 그런데 지인은 정말 직장을 구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터라 진지하게 회사에서 구하고 있는 직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회사에 출근해서 잠깐 통화한 거라 길게 얘기하지는 못하고 카톡에서 회사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회사에서 줄 수 있는 급여, 하는 일, 쌓을 수 있는 커리어, 커리어를 쌓은 뒤에 갈 수 있는 방향 등 궁금한 점을 알려주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곧 카톡방에 날아든 선물.
"헉, 이게 뭐예요?"
"너무 감사해서요?"
"제가 한 것도 없는데…"
"에이.. 경력자에게 이런 얘기 들을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죠. 너무 감사해요!"
종일 끝없는 회사 일에 지쳐가고 있을 무렵 얼마 전 인터뷰를 했던 원장님 중 한 분이 사진을 보내왔다. 인터뷰 중에 말씀하셨던 특허가 나왔다고 알려주기 위해 보낸 거였다. 그래서 나는 축하드린다고 말씀드리며 홈페이지 기사로 올릴 테니 보도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보도자료 보낼 때 주셔야 할 내용, 원고 분량 등을 말씀드리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날아든 선물.
"헉.. 이런 거 안 주셔도 됩니다. 원장님. ㅠㅠ"
"밥은 코로나 때문에 못 사드리고 직원들과 빙수 드시고 힘내세요! 제 마음입니다. 원래 주는 거 좋아하는데 받기만 하는 것은 왠지 쑥스러워요."
이런 일이 없는데 하루에 비슷한 두 가지 상황으로 선물을 두 번이나 받고 나니 그동안 나는 얼마나 주는 데는 인색한 인간이었고, 받는 것에는 익숙한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크게 느껴졌다. 어제 친구네 집에 가면서 무언가를 보답으로 주려는 마음을 먹고, 실제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무수히 많은 생각이 지나가고 결국에 생각만 하다가 끝이 났듯이. 예전에 아는 선배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선배를 기다리며 지하철 앞에 팔던 약과를 몇 개 샀는데(고작 2~3천 원이었다) 엄청 고민을 했었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에는 굉장히 인색한 사람인거다. 대학 다닐 때와 첫 직장 생활을 하면서 힘이 들었을 때도 선배들에게 얻어먹는 건 너무나 익숙하고 편했지만 후배들에게 밥이나 커피 그리고 술을 사는 건 참 어려웠다. 물론 돈이 없던 시절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 몹시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인 것 같다.
받는 것이 익숙하다는 것에 있어서는 어떤 물건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가족들에게 내 별명은 '팥쥐'인데 여동생과 둘이 살 때 집안일을 거의 하나도 안 하고 여동생 혼자 콩쥐처럼 대부분의 집안일을 해서 생기게 된 별명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생기는 온갖 집안일들을 하지 않으며 20년 이상을 잘 지내왔던 것이다. 내가 입은 옷을 내가 아닌 누군가가 빨아서 다시 깨끗한 상태로 눈앞에 와 있어도, 내가 누운 자리를 다른 이가 청소해 깨끗해져 있어도 '내가 할 일을 누군가 해 주었구나'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어릴 때부터 그런 역할을 한 엄마, 여동생 그리고 지금의 짝꿍까지...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렸다.
당연히 '감사해야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도 부족한 상황'인데 말이다. 지금에 와서 이런 나를 돌아보며 가장 뼈아프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그렇게 감사해야 하는 마음을 가져야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내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던 한 친구가 나를 볼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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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년
이라고 했었나 보다. 하지만 친구가 그렇게 뼈아픈 농담을 해도 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너무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해 전혀 보이지 않았던 이기적인 마음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니 가슴이 좀 저려 온다. 지난 오랜 시간 내게 아낌없이 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그들에게 나도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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