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우스
[The Psychology Times=페르세우스 ]
며칠 전 옆자리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민원인과 격하게 대화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전화 너머로 양아치라는 단어를 포함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내용인즉슨 저희 설비로 인하여 자신의 건물 벽에 파손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보수 비용을 저희에게 전액 보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객 측의 건물은 이미 30년이 넘은 건물이었습니다. 자연적으로 노후화가 된 부분도 있었기에 그 조건을 바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내부적으로 검토 끝에 손해사정사를 고용해서 과실비율을 판정해서 보상절차를 진행하자고 했더니 갓!물!주! 님께서는 막무가내입니다. 나는 그런 건 모르겠고 무조건 물어내라는 겁니다.
결국 저희가 제안하는 중재안으로 협상이 실패한다면 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겠다는 결론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민원인은 소송을 하면 될 일인데 그때부터 계속 막무가내로 담당자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폭언을 쏟아내면서 담당자의 말꼬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었죠. 아마 계속 괴롭히다 보면 뭐라도 해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분들은 소송까지 갈 생각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전보건공단의 근로환경조사에 따르면 현재 화가 난 고객을 응대하는 시간이 전체 업무시간의 25% 이상인 경우인 노동자가 623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어린이나 노령층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가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 역시 감정노동이라는 의미를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배워봅니다. 감정노동은 보통 콜센터 직원 정도로만 생각해왔는데 범주가 이렇게 넓다는 것 역시 몰랐습니다. 제가 하는 일 역시 민원인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감정노동에 속해있었던 것이죠.
그동안 저도 당하는 입장에서 얼토당토않은 억지스러운 요구사항을 들이미는 민원을 꽤 많이 겪어봤습니다. 다짜고짜 절차상 불가능한 업무를 처리해 달라고 하며, 자신의 말만 쏟아내면서 자신의 일정만 우선적으로 처리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욕설까지 내뱉는 분들도 계시죠. 예전에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며칠 동안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요령도 생겼습니다.
보통 제 경험상 인격적인 모독을 하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방식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초창기에는 흥분하며 폭언을 퍼붓는 민원인에 반응을 하면서 함께 소리를 지릅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심장이 뛰는 부작용을 겪죠.
적응기가 되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업무가 절차나 규정상에 문제가 없으며 담당자가 임의로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냥 여기서 애쓰지 마시고 상위기관에 부당함을 신고를 하시라고 말씀드리죠. 물론 이럴 때는 이 민원인에 대한 정보를 시간 순서대로 기록으로 남겨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완숙기가 되면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거 다 녹음되고 있어요. 이런 것도 업무방해죄에 속합니다, 선생님.'라고 차분하게 말을 하며 고객의 억지나 폭언을 능구렁이처럼 흘려보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겉으로는 멘탈에 타격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일을 하다 보니 적응기 정도의 내공이 쌓인 듯합니다. 하지만 한 번 힘들게 통화를 하고 나면 진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제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봅니다. 하지만 대안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감정노동자분들과 소통을 하면서도 화가 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웬만해서는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제 인내심을 테스트를 하는 듯 한 극한의 상황을 겪는 경우가 간혹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다 보니 제가 그동안 화를 냈던 상황들 중에서 일부는 좀 더 참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저부터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결국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화를 내봐야 자신의 정신건강에만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감정노동자에 대한 제도적인 보호가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것보다는 조금 더 폭넓고 다양하게 그리고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많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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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 아무리 화가 나도 욕은 하지 맙시다. 욕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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