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연
[The Psychology Times=유시연 ]
| 병이 되어버린 ‘체념’이라는 감정_체념 증후군
체념 증후군(Resignation Syndrome). 2000년대 초반, 스웨덴, 호주 등의 나라에서 난민 어린이들에게 발견되기 시작한 병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환자가 그냥 어린이도 아닌 ‘난민’ 어린이라는 점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의 피해가 오롯이 국민들에게 돌아가면서, 그들은 스웨덴, 호주 등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다. 나의 집, 나의 동네에서 또래와 뛰어놀며 희망찬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어린이에게도 예외는 없다.
모두에게 망명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망명이 거부되거나, 매우 단기간의 거주만 허락되는 등 불안한 생활은 여전히 지속된다. 우리의 집이 없고, 언제든 총구의 위협에 노출되는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난민 어린이들에게 지옥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생활이 지속될수록 아이들은 희망을 잃어가며, 이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니, 이 상황에 체념하게 된다.
현실을 깨달은 아이들은 잠에 들게 되는데, 그들의 수면시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는 것이 바로 ‘체념 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새근새근 잠든 아이이지만, 이들의 잠은 수개월, 수년이 지나도록 깨지 않는다.
| 언제쯤 깰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이들은 언제쯤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것일까? 섭취 및 배설 활동도 멈추고, 의식도 없지만 아이들의 신체에는 문제가 없다. 얼음과 같은 외부 자극에도 신체가 반응하고, 환자들을 검사한 모든 결과가 정상 수치에 있다. 책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의 저자 수잰 오설리번은 이러한 현상을 ‘해리’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다. 즉, 이러한 불안정한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잠에 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상황이 개선되면, 증상이 점차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민은 부모의 잘못이 아닌 사회의 잘못이다. 상황이 당장 나아질 거란 보장은 없고, 이는 곧 아이가 잠에서 깨어날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뜻. 부모들은 잠에 든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코에 낀 호스로 영양소를 공급하고, 직접 몸을 움직여 스트레칭 시키며 아이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체념 증후군의 기록(Life Overtakes Me, 2019)>에서도 잠에 빠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중 7세 소녀 다리아는, 가족의 망명이 거부되었다는 재판 결과를 받고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 이후로 5개월 동안이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몇 달에 걸쳐 서서히 의식을 회복했고, 자신이 잠든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에 대해 담당 의사는 ‘상태의 호전에 오랜 기간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현실에 마음을 열고 다시 희망을 갖는 준비 기간’이라며 아이들이 잠에 든 상태에서도 꾸준히 희망의 기운을 전하고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 우리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병
보통의 질병들은 주변 사람들이 앓거나 미디어를 통해 접하기 때문에 병명 정도는 익숙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만 지난 3년간 200건 이상 보고되고 이제는 그리스,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집단 발병이 보고되는 이 병은, 왜 우리에게 이토록 낯선 것일까?
바로, 그들이 난민이기 때문이다. 2018년, 예멘 출신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입국해 대한민국 정부로 난민 지위 인정을 요청한 사건이 있었다. 문화적으로 유사성이 낮은 무슬림 난민들이, 단기간 내에 급격히 유입되면서 대대적으로 우리 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이는 같은 시기 유럽 난민 사태와 이어지며 한국 사회에서의 이슬람, 난민에 대한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난민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 참여자는 64만 명을 넘겼고, 6월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난민 반대 집회의 추산 참가 인원 역시 10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이 사건은 한국 국민 중 다수가 가지고 있는 외국인, 특히 이슬람 문화에 대한 경계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OECD 37개국 중,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3.5%로 35위에 불과하다. 우리의 주변엔, 난민을 찾아볼 수 없다. 보편적인 ‘우리’, 그리고 ‘이웃’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이를 다룰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갈수록 국가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서로의 문화에 대한 존중을 중시하는 흐름 속에서, 그 어떤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이들을 사회적 소수자로 바라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것 역시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 중 하나가 아닐까.
체념. 희망을 버리고 좌절하는 그 한 순간의 감정이 증후군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절망감을 안겨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의 주인이 어린 아이라면 어떨까? 더욱 큰 눈덩이로 불어나 아이의 마음을 짓누를 것이다. 어서 이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 ‘나의 나라’, ‘나의 동네’에서 잘 자랄 수 있기를.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없더라도 부디, 어두운 현실에서 도망친 꿈에서라도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 참고 자료 및 문헌
- 이지유.(2021).난민을 생각한다.창비어린이,19(4),239-248.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체념 증후군의 기록(Life Overtakes Me, 2019)>
- 현기성. [기자 수첩] 난민 아이들은 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나.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22/10/17/2022101702833.html)
- 수잰 오설리번.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서진희, Trans.).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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