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우리 엄마는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해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걸까요?”
취한 사람과 화가 난 사람의 공통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했던 말을 반복한다는 점이며 둘째는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엄마가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남은 옵션은 하나, 엄마는 화가 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1. 마음이 불편하면 인지기능이 저하된다.
정서적으로 과부하가 심한 사람에게 지능검사를 실시하면 자기가 잠재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지능보다 낮은 결과가 나타나곤 한다. 신기한 일은 동일한 사람에게 일정 기간 상담을 제공하고 정서가 안정된 후 검사를 하면 점수가 올라가곤 한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수치로 재는 지적능력(I.Q.)이라는 개념은 부분적인 단서를 보고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 적합한 지식을 선택하고, 패턴을 깨달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같이 복잡한 정신적 기능인데, 불편한 감정이 차오른 상태에서는 그걸 해결하는데 에너지를 소비하니 고차원적인 인지기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정서적으로 과부하가 걸린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화가 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현상을 ‘억압’으로 설명하는데, 억압이란 처리하기 힘든 감정을 무의식의 세계에 가두어놓고 기억하지 않는 방어기제를 가리킨다. 김진건, 고영건(2010)은 분노를 억압할 때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망각과 자기암시를 통해 억압한 분노는 언젠가는 폭발적으로 터진다는 이유고, 둘째는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정작 화가 난 행동을 하므로 도움을 받을 기회를 잃는다는 이유이다. 셋째는 분노를 억압할 경우 만성적인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인데 내용을 읽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2. 무의식적 행동이니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한다.
그러니 엄마에게 “왜 했던 말을 반복하냐”고 잔소리한들 소용이 없다. 무의식적인 행동을 멈추고 ‘내가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구나’를 인식하려면 일단 마음이 풀려야 하며, 변화를 만들고 싶은 자기만의 이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이유, 동기, 의지 이런 개인의 영역들을 엄마의 선택으로 존중하더라도 마음이 풀리는 과정을 도와주고 싶다면 일단은 엄마가 반복하는 말이 무엇인지 듣고 머리로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을 해내기 위해서 자녀인 나의 측면에서는 엄마를 나의 엄마가 아닌 ‘OOO여사님’으로 분리해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나와 엄마를 서로 다른 존재로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이 어렵다면 내 안에도 엄마처럼 뭉쳐있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탯줄부터 엮였던 존재이니 당연한 일이다. 화난 감정 둘이 부딪힐 때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없으니 이럴 때는 호흡을 가다듬고 용기가 생길 때까지 한 걸음 떨어지는 유연함을 멋지게 발휘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어른으로 존재했던 엄마라는 존재를, 나의 기대와 욕구를 떼어놓고 분리해서 이해한다는 시도 자체가 인간에게는 얼마나 고귀한 경험인지, 내가 살아보지 않은 엄마의 역사 속 시간을 이해해보는 시도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여행일 것이다.
3. 마음이 풀리면 머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관찰하다 보면 분노 밑에 숨은 다른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엄마가 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냐고?
그 부분에 정서적 에너지가 뭉쳐있으니까.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은 분노이지만 분노는 항상 뚜껑과 같은 감정이라 열어보면 취약한 무언가가 뭉쳐있게 마련이다. 무엇이 뭉쳐있는가를 발견하려면 분노의 뚜껑을 일단은 함께 열어야 하니, 엄마를 이해해보기로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는 심호흡을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진영, 고영건.(2010).분노 억압의 역설과 분노 억제의 비밀.인간연구,(19),15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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