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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양진서 ]


(사진 출처·다음 영화)

꿀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며 비행하는 벌새. 턱없이 작은 날개로 힘차게 날갯짓하는 모습이 영화 <벌새>의 주인공 은희(박지후)와 비슷하다. 1994년의 여름을 살아가고 있는 은희에게 아직 세상은 조금 버거워 보인다. 수업 시간에는 더듬거리며 영어책을 읽느라 반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쉬는 시간에는 공부를 못 한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된다. 아빠의 강압적인 훈계를 제외하고는 정적이 흐르는 식사 시간,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는 은희의 답답한 세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 중에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한문 학원 선생님 영지(김새벽)의 질문에 은희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은희의 눈빛은 마치 구조 신호처럼 보인다. 영화는 뜨거운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한없이 차갑기만 하다. 


이런 은희가 계속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원동력이 돼준 인물이 바로 영지다. 영지는 유일하게 은희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해주는 인물이다. 좋아하는 게 뭐냐는 영지의 질문은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가족도 학교 선생님도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꿈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대학 진학만을 강요하고 말썽을 피우는 은희를 혼내기만 했다. 영지의 생소한 질문에 ‘만화’라고 대답하는 은희의 눈빛은 처음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순수함으로 가득 찬다. 


열다섯은 복잡한 시기다. 친구 관계로 고통받기도 하고 삶에 대해 서투르지만 깊은 고민을 하기도 한다. 은희 역시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평범한 중학생일 뿐이다. 꿈을 응원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때다. 만화를 좋아하는 은희에게 하얀 스케치북을 선물한 영지처럼 말이다. 그러나 은희 주변의 어른 대부분은 그를 골칫거리로 치부하며 이해해주지 않는다. 이는 ‘열다섯’의 나이를 ‘중2병’으로 일반화해버리는 우리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로 오늘날 청소년과 관련된 신조어를 살펴보면, ‘교복충’, ‘급식충’과 같은 혐오어들이 대부분이다. 사춘기라는 자연스러운 시기를 중2병이라며 조롱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연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2022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22’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삶의 만족도는 6.6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였다. 이는 냉담한 사회 속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의 현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자료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독립영화 <벌새>는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 관객상 수상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에서 59개의 트로피를 휩쓰는 쾌거를 이뤘다. 개봉 후에는 14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독립영화계에 활력을 줬다는 평을 받았다. 이렇듯 많은 관객과 평론가가 영화에 매료된 것은 담담하게 그려진 은희의 방황과 상처에 이들이 깊게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인들이 젊은 주인공의 성장통을 담은 작품에 열광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령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을 받은 책은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해당 작품은 어른들의 허위와 위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16세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 소설이다. 2위를 차지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역시 대표적인 성장 소설이다. 일반화된 삶을 거부하는 반항적인 인물은 어른들이 규정한 삶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청소년들, 혹은 같은 하루를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테다. 그러나 이처럼 반항적인 주인공의 성장통이 각광받는 현상과 달리 현실의 청소년들은 사회적인 편견과 부정적인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사진 출처·민음사)


은희의 비행은 아직 서투르지만 그렇기에 더욱 찬란하다. 끝까지 비행을 멈추지 않는 은희와 그의 곁을 묵묵히 바라봐주는 영지의 이야기는 여름날의 햇볕처럼 따스하다.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라는 은희의 대사에서 그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과연 스크린 밖의 수많은 은희들도 영지와 같은 따뜻한 어른을 만날 수 있을까?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마다의 과정을 조력해줄 진정한 어른이 절실한 시기이다. 





참고문헌

  • 원은정. 2019.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연구 : ‘중2병’ 용어와 확산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ocial Prejudice of Adolescents. 성공회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울
  • 문학뉴스. 2022. URL: 
  • http://www.munhak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1133
  • 동아일보. 2022. URL: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1214/1169857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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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2-27 07: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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