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예린
[The Psychology Times=강예린 ]
<아비정전> 스틸컷, 아비(장국영 役)“다리가 없는 새가 살았다. 이 새는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새는 날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몸이 닿는 날은 생애에 단 하루, 그 새가 죽는 날이다.”
위 문장은 왕가위가 감독을 맡은 장국영 주연의 영화 <아비정전>에서 주인공 ‘아비’가 내뱉는 독백이다. 함께하던 여성 수리진이 떠나고, 홀로 남은 곳에서 담배를 문 채로. 아비는 그러니까, 바람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남자다. 자신을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 중에서, 누구를 사랑했는지도 자신도 모른다고 말한다.
어제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관계더라도 미래를 약속하자는 말이 나오면 곧바로 곁에 있는 여자를 떠나게 만들고 미련 없이 다른 여자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완연한 끝은 없고 반복적인 시작만이 난무하는 관계. 아비는 왜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아비가 가진 ‘결핍’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자신을 키운 부모가 양모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 얼굴조차 알 수 없는 친모에 대한 그리움과 사실을 말하지 않은 양모에 대한 배신감…….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나 증오를 넘어 아비에게 상실과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불신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한다.
<아비정전> 中 시계
‘발 없는 새’ 아비는 자신을 그렇게 정의했다.
돌아갈 곳도, 나아갈 곳도 더는 보이지 않아서 길게 방황하기만 하는 남자. 아비는 발이 없는 새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몸을 내린다고 했고, 정말 죽을 때가 되어서야 문득 수리진이라는 여자를 떠올렸다. ‘누구를 사랑했는지도 몰라서’ 잡지도, 그렇다고 놓지도 못하는 채로 죽음까지 맞이하고 만 것이다. 시계를 바라보며 "당신과 함께 여기 있고, 당신 덕분에 난 항상 이 순간을 기억하겠군요." 이야기를 했듯이,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면서.
영화의 마지막,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올라가는 동안에 꼬리를 물던 생각은 어느 한 지점에 멈추고 말았다. 현재 많은 2~30대의 삶의 형태도 아비와 같은 방향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배고픔을 잊은 채 꿈과 열정을 따라가는 사람은 조금 ‘바보’ 같고, 안정을 위해 쉬운 길을 걷는 사람은 생기가 없고 ‘청춘’답지 못하다. 정말 청춘은, 청년은 ‘고생을 사서’도 하고 싶어 할까?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너무 아파질 이유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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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결핍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결과로 사람과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영화 <아비정전>에서는 쓸쓸함이 묻어난 장국영의 연기로 다시 태어난 ‘아비’가 어떻게 보였을지라도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그 불안과 상실감을 고질적으로 안고 있지는 않기를 바란다. 영화에서 보는 고독함마저 이토록 쓸쓸하고 가슴이 아프니, 오늘을 사는 개인은 서로의 손으로 온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발이 없는 새’였던 아비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다음과 같은 독백을 남긴다.
“새가 한 마리 있었다. 죽을 때까지 날아다니던. 하지만 새는 그 어느 곳에도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새는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죽어있는 새. 아비를 맡은 배우 ‘장국영’이 표현한 아비는 정말이지 공허하게 느껴졌는데 그런데도 시선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쓸쓸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힘을 나는 아비가 가진 사랑 덕이라 느꼈다. 자신이 누구를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이었지만, 아비는 매 순간 누구보다 절박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모든 것을 사랑해서.
단 한순간 영화 속에서 쓸쓸함이 조금 사라지는 순간을 나는 아비의 마지막 죽음에서 보았다. 눈을 감으며, 뒤늦게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마주한 순간 아비는 첫 날갯짓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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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한없이 불안하겠지만, '주인공'인 '나'라는 작품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비행하게 될 것이다. 오늘 이 글을 마주하고, 지치고 어떤 결과가 마음처럼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앓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자신을 스스로 다독여주는 것은 어떨까?
아비는 발이 없는 새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발이 없는 새일지라도 잠시 내려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한 힘찬 비행을 위해 준비를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오늘의 자신을 너무 다그치지 말고, 그렇게 누군가의 어깨에 쉬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지용신, (2009), 「왕가위 초기 영화 연구 : 『아비정전』과 『중경삼림』을 중심으로」(박사과정논문), 한남대학교, 대전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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