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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대한민국은 2023년 1월 30일을 기점으로 코로나 전염방지를 위해 시행되었던 마스크 의무착용 기간이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길 거리에는 하얀색과 검정색, 가끔은 알록달록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즐비하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에도 마스크를 기피하던 서구권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인 이 현상, 왜 그럴까? 한국인은 왜 마스크가 괜찮을까? 


한국인이라는 거대집합을 이해해보기 위해 내가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인 나의 기억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가 범죄자를 연상시켜 두렵고 혐오스럽다는 서구식 공포는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되려 내게 마스크는 친숙하지만 촌스러운, 귀찮지만 따뜻한 초겨울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1. 마스크와 기억 


 

마스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기억은 엄마이다. 엄마는 환절기 무렵에는 항상 파란색 면으로 된 방한 마스크를 꺼내 쓰셨다. 마스크는 늦은 밤까지 가게에서 일을 하는 엄마를 추위로부터 보호해주는 저렴하고도 간편한 도구였다. 어릴 적부터 온갖 알러지가 있던 나는 온도 차가 심해지는 아침과 저녁 무렵에는 재채기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꺼내 오신 것도 마스크였다. 학창시절 등굣길에는 파란색 얄팍한 면마스크를 직접 걸어주셨고, 세월이 지나 대학생이 된 후에는 매일 갈아쓸 수 있는 하얗고 주름진 일회용 마스크를 박스로 주셨다. 내가 감기라도 걸린 날 밤에는 방에 슬쩍 들어와 자는 나의 귀에 걸어주고 간 물건도 마스크이다. 그래서일까? 나의 내면세계에서 마스크는 엄마로부터 받은 무언의 돌봄을 상징하며, 그런 이유로 마스크를 쓰는 순간 나는 ‘엄마에게 배운 민간요법을 적용하며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2. 기억은 감정을 소환한다. 


 

기억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기억을 간단하게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분류하는데 표면적인 의식에만 머물렀다 짧은 시간이 흐른 후 지식으로 인출되는 기억이 단기기억이라면, 장기기억은 무의식에 머물렀다 인출되는 기억을 가리킨다. 가령 어제 구매한 마스크의 KF 숫자와 브랜드 이름을 외우는 것이 단기기억이라면, 지금 이 글을 쓰며 불러일으켜지는 마스크와 엄마에 관한 기억은 장기기억이다. 장기기억 덕분에 나는 글을 쓰면서도 조그만 구멍가게와 노란색 마을버스, 촌스럽고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재경험하고 있다.


기억이 감정을 소환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장하면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과거의 사건들이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도 잔상으로 떠올라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단어의 정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기억은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는, 기억하는 자의 정신적 기능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기억하다’라는 행위를 할 때 그 행위는 기억하는 자의 ‘세상을 보는 시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던 사건을 겪으며 ‘위험한 세상’을 경험한 사람의 무의식을 상상해보자. 그의 기억에는 몸으로 경험했던 폭력과 위험이 저장되어 있다. 그의 트라우마 속에 마스크가 존재할 때, 마스크를 볼 때마다 ‘역시 세상은 위험한 곳이지’를 합리화할 수 있는 정보를 불러 모으는 것은 어찌 보면 기억을 유지함으로써 자기를 보호하려는 당연한 현상이다.

 

 


3. 감정은 기억을 재구성한다. 


 

기억은 감정을 소환하고, 감정은 기억을 재구성한다. 바꾸어 말하면 과거의 산물이면서도 머무르지 않는 까다로운 기억을 다루고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이 감정에 있다는 의미이다.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무형의 경험이 감정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감정뿐 아니라 내적 이미지, 감각, 해석과 같은 인간의 정신적 기능이 모두 기억과 총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만 상담실에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감정은 가장 빠르고 쉽게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세계에 접촉할 수 있게 돕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마스크로 돌아와 보자.

혐오스러운 감정과 연합된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마스크의 효용성을 설명하는 정보제공 정도로는 마스크를 쓰게 할 수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돌봄과 연합된 기억의 소유자인 나와 같은 사람들은 각종 위험으로부터 자기를 돌보기 위해 마스크를 찾아 쓸 것이다. 엄마와 마스크는 나의 장기기억 안에 단단하게 묶여있고, 장기기억은 진하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까,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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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06 11: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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