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현
[The Psychology Times=김채현 ]
사진: Unsplash의 Aaron Burden
초등학교 때부터 숙제로서 항상 내 곁에 존재해왔던 일기는 졸업을 하고, 강제성이 없어진 순간부터 내 곁을 떠나갔다.
그나마도 예뻐서, 꾸미는 행위가 재미있어 보여서 산 다이어리는 채 한 달이 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한 해를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나의 다이어리는 왜 한 달을 넘기지 못했을까?
일기란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을 적는 개인의 기록”을 뜻한다. 하지만 나의 일기는 정돈된 나만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저 일과를 나열하는 형식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진정한 나의 생각, 느낌을 적었다가 타인이 볼까 봐 두려운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두려운 감정이 들었을까?
초등학교 시절 일기는 ‘검사’의 대상이었다. 일기를 작성해서 선생님께 제출했고, 선생님은 모든 아이의 일기를 확인하신 후 간단한 코멘트를 작성해주시기도 했다. 처음에는 솔직한 생각과 느낌을 가감 없이 드러냈지만, 선생님께서 갖고 계신 나에 대한 이미지가 일기 속 내용으로 인해 해쳐질까 봐 두려워졌다. 따라서 더 이상 솔직하지 못한 일기가 되어버렸고, 감정을 꾸며서 작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인상관리 전략”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에 따르면 “인상관리는 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개인의 인상을 설정하고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다. 그리고 마크 R. 리어리(Mark R Leary)와 로빈 M. 코왈스키(Robin M Kowalski)에 따르면 “타인에게 인상을 창출하고자 동기화되었다면, 개인이 만들고자 하는 인상의 유형을 결정하고, 그 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행위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한다.”라고 하며, 여러 심리학자는 “이러한 행위 유형을 인상관리 전략 혹은 자기연출 전략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나는 선생님이 갖고 계신 이미지에 부조화가 일어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결국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회피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소셜 인사이드”라는 Brunch Book을 작성한 저자인 ‘차돌’은 “유년 시절의 일기장이란 일종의 잘 보이기 위한 기록과도 같았다”라고 말하며 “유년 시절의 일기장이란 SNS의 원조 격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실제의 나’와 ‘일기장에 쓰인 나’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며 이에 대해 “선생님에게, 혹은 엄마에게 검사를 받으며 착한 나, 올바른 나, 밝은 나여야만 했던 습관은 나도 모르게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보다 반드시 괜찮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스스로에게 강요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어린 시절에 일기를 검사받으며 생겨난 감정이 고착화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위와 같은 사례들을 보며 초등학교에서 일기장을 검사하는 관행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따라서 “교사의 검사를 염두에 두고 일기를 작성하게 됨으로써 아동의 양심형성에 교사 등이 실질적으로 관여하게 될 우려가 크며 아동 스스로도 자신의 느낌이나 판단 등 내면의 내용이 검사·평가될 것이라는 불안을 제거하기 어려워 솔직한 서술을 사전에 억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의견을 밝히며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게 일기장 검사 방식에 대한 개선 의견을 표명하였다.
이렇듯 일기는 어느덧 본래의 목적을 잃고 솔직해지지 못해진 채 존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전문가는 일기 쓰기를 권장하곤 한다. ‘나를 마주하는 글쓰기’로서 자신의 내면을 관찰할 수 있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며 건강한 일상을 돕는 자기계발 도구로서의 기능을 하는 등의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해질 용기를 갖고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나에게만 보여지며, 나를 위한 일기를 작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기사
참고문헌
-국가인권위원회. (2005.04.07).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관행 개선되어야". https://www.humanrights.go.kr/site/program/board/basicboard/view?&boardtypeid=24&menuid=001004002001&boardid=554902
-네이버 국어사전. (2023). "일기". https://ko.dict.naver.com/#/entry/koko/ebea574685dc4e7db76db8466baf48b8
-신동진 (2022.09.28). 감정일지, 業세이, 감사노트… 일기로 데이터 쌓아 자기계발.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927/115687229/1
-양병창. (2001). 인상관리전략들의 반응강도에 대한 자존심, 체면, 상황적 요인의 효과. (국내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대학원). 7-8.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1934de437284ff9b&outLink=K
-차돌. (2022.10.24). 소셜 인사이드. 10화 당신의 일기는 솔직한가요?. Brunch Book.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oxford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