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연
[The Psychology Times=유시연 ]
최근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 <카지노> 시즌 2가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카지노의 전설이라 불리던 한 남자가 모든 것을 잃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건의 배경이 도박장인 만큼, 도박에 빠져 많은 것을 잃고 빚더미에 나앉는 사람들 역시 적잖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드라마 안에서의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2015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도박범죄의 사회적 비용 추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도박 중독으로 인한 개인·사회적 지출 비용이 25조원을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이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가족의 생계, 사회적 질서 유지를 위한 관리에 있어 국가 차원의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1913년 모나코의 한 카지노의 룰렛 게임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구슬이 26번 연속으로 검은색 칸에 떨어진 것이다. 20번이 넘어갈수록 사람들은 ‘이제 빨간색 칸으로 떨어질 차례’라며 돈을 걸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고, 엄청난 돈을 잃게 되었다. 이처럼 도박에서 계속 돈을 잃기만 하던 사람이 ‘이번엔 이길 차례야, 꼭 딸 수 있어.’라며 희망을 갖는 것을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실패 경험을 토대로 기계가 지난 이력을 기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음엔 이길 확률이 높을 것이란 희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도박에서 이길 확률은 질 확률과 정확히 50:50이며, 이는 무수히 많은 시도를 토대로 나온 통계이기 때문에 도박꾼들의 불과 몇 번의 경험으로 지켜지기 어려운 확률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 돈을 따 가고, 자신이 진 경험이 나중에 보상받을 것이란 희미한 가능성은 계속해서 그들이 더 큰 돈을 걸고 게임에 참여하게 만든다.
진 사람이 터무니 없는 희망을 거는 한편, 이긴 사람도 승리의 경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농구 경기에 관련하여 설명될 수 있는데, 이전 슛을 성공시킨 선수가 다음 슛 역시 성공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인지적 편향 현상을 ‘뜨거운 손 현상(Hot Hand Phenomenon)’이라 부른다. 1985년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와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가 발표한 논문 <농구 경기에서 뜨거운 손>을 살펴보면, 두 사람은 100명의 농구 팬들에게 자유투를 성공한 선수와 실패한 선수의 슛 성공 확률을 예측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응답자 중 91%는 성공한 선수가 다음 슛을 성공할 확률이 실패한 선수보다 더 높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렇게 기대를 걸게 되는 선수들은 ‘뜨거운 손’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며, 승리를 위해 경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받는다. 특히나 이런 운동경기의 경우, 하나하나의 성과가 선수 개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한 것으로 분석되며, 이렇게 기대치가 높아진 선수들은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아 실제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한다.
도박에서 많이 쓰이는 슬롯머신은 7이 연속으로 3개가 나오면 돈을 딸 수 있는 기계이다. 하지만 그 행운이 결코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한 자리에 나올 수 있는 숫자가 0~9로 10가지라 했을 때, 777이 나올 수 있는 확률은 무려 1/100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한 개를 제외하고 두 자리 모두 7이 나왔다면, 그 확률은 순식간에 30/1000으로 이전의 30배가 된다. 이렇게 갑자기 늘어난 확률임에도, 결과를 보고 사람들은 ‘하나만 더 맞았어도’라는 마음에 아쉬움을 갖는다. 이렇게 성공에 거의 근접한 상황에서 실패를 크게 아쉬워하는 경우를 ‘니어미스 효과(near-miss effect)’라 부른다. 결과적으로는 그냥 실패지만, 조금만 더 했으면 성공이었다며 터무니없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돈을 걸고 게임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역시 도박 중독을 일으키는 위험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니어미스 효과는 도박 현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시가 시험이다. 고시 혹은 수능에서 아슬아슬한 점수 차로 불합격한 경우, ‘한 해만 더’라는 생각으로 오랜 시간 시험 준비에만 몰두해 결국 자신의 삶을 제대로 찾지도 못한 채 공부만 하며 세월을 보내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도 꽤 많은 사례로 발견된다.
도박은 ‘돈 또는 가치있는 소유물을 담보로 결과가 불확실한 사건에 내기를 거는 행위’라는 정의로 설명될 수 있다. 물론 도박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의 삶에 있어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불러 온다는 점에서 그 악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오락적 재미를 위한 누군가의 행동이, 그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노동의 대가가 아닌 ‘한 방의 인생역전’을 꿈꾸게 만들고, 그의 가족들에겐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엄청난 빚과 가난을 안겨준다. 돈을 벌고자 하면 노동을 하고, 즐거움을 느끼고자 하면 고된 하루 끝에 가족과 얼굴을 마주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자. 도박은 채워줄 수 없는 마음의 헛헛함, 하루하루 삶에 대한 보람은 현실에서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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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 박병률. (2015, November 17). [영화 속 경제] <황제를 위하여>... 성공이 눈앞, 포기 못하는 “니어미스 효과.” 주간경향.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_id=201511091839191
2) 대체 도박을 왜 해? 도박심리. (2021, December 1). 기획재정부 블로그 <경제 E야기>. https://blog.naver.com/mosfnet/222583627267
3) 이수정, 신현지, & 김교헌. (2016). 위험감수성향과 승리접근경험이 미래 도박의도에 미치는 영향. 한국심리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343-343.
4) 강준만. (2013). 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 가지 이론.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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