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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고 다정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 시지프스 신화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보는 삶의 철학
  • 기사등록 2023-03-29 19: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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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조수아 ]


살면서 한 번쯤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와 같은 인간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고민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삶에 대한 권태와 무의미를 느낄 때 특히 심화되는 딜레마 같은 질문일지 모른다.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을 버텨내는데, 그렇게 살아내는 내일이 오늘과 같다면? 그럼에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포토 스틸 이미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렇듯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 삶 속 존재론적 질문과 그와 관련된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이 제작을 맡은 해당 작품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배우 양자경 주연의 영화로, 지난 13일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포함 7관왕을 수상하며 최근 더욱 화제가 된 바 있다. 영화는 미국에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에블린 앞에 멀티버스 속 수천, 수만의 자신의 삶의 모습이 나타나며, 모든 에블린의 능력을 빌려와 위기로부터 세상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삶에 관한 허무주의

영화에는 질서를 부수고 혼란을 초래하는 조부 투바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조부 투바키는 삶에 대한 허무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로, ‘무(無)’를 상징하며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라는 의미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의 허무주의적 가치관이 반영된 인물이라고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주인공 에블린의 딸 조이는 무의미를 상징하는 블랙홀과도 같은 조부 투바키의 베이글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조이의 모습을 한 조부 투바키는 세상 모든 걸 베이글 위에 올리면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는 진실이 보인다고 말한다. “다 부질없는 거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괴로움과 죄책감이 사라지잖아”라는 그녀의 말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시지프스 신화로 바라본 삶의 의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시지프스 신화의 이야기를 통해 바라볼 수도 있다. 시지프스 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지프스는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의 대명사로 대표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신들에게는 성가신 존재였던 그는 결국 신들에 의해 저승으로 끌려가 형벌을 받게 되는데, 그게 바로 익히 알려진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이다. 그가 온 힘을 다해 정상까지 올린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결국 시지프스는 영원히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려야만 하는 굴레에 빠진 것이다. 올리고 올려도 계속해서 떨어지는 바위를 또다시 밀어야 하는 그의 상황은 인간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지루하고 권태로운 삶.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은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어차피 올리고 올려도 떨어지는 바위임에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그에 맞서는 쪽을 선택한 지혜로운 ‘인간’을 상징하는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허무주의의 극복

영화 속에서 조부 투바키를 상대할 의지가 꺾인 에블린은 왜 조부 투바키를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우주에 있는 내가 아닌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자신이어야만 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에블린의 남편인 웨이먼드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무엇이든 너무 못하니까.” 이 같은 그의 대사는 허무주의의 근원인 ‘무(無)’를 떠올리게 한다. “전통적으로 무는 철저히 부정적이며, 모든 것들의 가치를 전도시키고,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 놓은 것으로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웨이먼드의 대사와 같이 ‘무’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영화에서 에블린은 딸 조이를 사랑하는 다정한 마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조부 투바키로부터 조이를 지켜낸다. 두려움과 권태로움, 허무함과 같은 이 모든 생각들은 스스로의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은 그러한 감정에 지배되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 속 웨이먼드의 말처럼 혼란스러운 인생일지라도, 그 속에서 다정함(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그래도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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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및 출처]

네이버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19402

이관표.(2021).하이데거의 니체 해석과 허무주의 극복의 문제: 허무주의의 본질로서의 존재역운과 무로서의 존재.현대유럽철학연구,(60),99-132.

송정림.(2014).시시포스_그러나 살아야 한다.월간 샘터,(),50-51.

씨네21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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