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은
[The Psychology Times=최성은 ]
[우리 눈에 가장 친숙한 가격표]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물건의 가격표를 보게 될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900원이 적혀진 가격표를 유심히 보려고 노력했다. 허나,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집 밖을 나선 순간부터 전봇대에는 [헬스클럽 홍보 팸플릿]이 보였고, 그곳에는 ‘월 119,900부터!’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한 이동하기 위해 탑승한 지하철 역사 내 물건 판매 매대에서도 ‘모자 9,900원’, ‘핸드폰 케이스 10,900’ 원 등, 끝에 900원이 붙은 물건들의 가격표가 눈에 띄었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가 주목적인 [백화점]에서도 900원의 향연은 끊이질 않았다. 집에 돌아와 채널을 넘기다 우연히 본 홈쇼핑에서도 ‘간장게장 159,900원’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놀랍게도 수많은 900원은 내가 하루 만에 목격한 것이다. 아마 내가 불현듯 놓친 순간들을 포함한다면, 우리가 일과 중 마주하는 가격표 속 900원이라는 숫자는 분명, 그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다.
[왜 하필 900원?]
‘9’라는 숫자가 ‘소비 패턴’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왜 하필 숫자 9였어야 할까?’ 를 생각해 보았다. 1부터 9를 생각한 다음, 10을 생각해 보았다. 처음 언급한 아홉 개의 숫자와 10이라는 하나의 숫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한 자릿수, 불완전, 일의 자리 등’의 답변이 생각났다. 즉, 9라는 숫자는 10과 가장 가까우면서, 그 차이가 극명한 숫자였다. 또한 9는 같은 자릿수를 가진 값 중 가장 높은 값을 가진 자리에 위치한다. 그 말은 곧 만 원대와 천 원대 혹은 천 원대와 백 원대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단위라는 것이다.
[900원에 지갑을 여는 이유 : 왼쪽 숫자와의 연관성]
각각의 숫자가 지니는 특성, 의미, 모양 등이 전부 다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특히, 900원으로 끝나는 가격표가 많이 보인다. 그 말인 즉, 그만큼 많은 기업이 마케팅 전략으로써 900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900원이라는 가격 지표가 판매에 효과적이고, 어떤 심리 때문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일까? 가격의 끝자리는 [가격지각 : 물건의 값이나 가치를 깨닫는 정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자리이다. 아래의 표를 보면 ‘9’라는 숫자가 전통적으로 할인된 가격의 이미지를 갖고, 낮은 가격에서 사용 빈도수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의 여러 국가의 소비 패턴에도 긴밀히 연관되고 있는 사실이다.
표 출처 : 김가은, 석관호. 900원 혹은 990원? 우리나라 소비재 가격의 끝자리 연구, 고려대학교, 한국마케팅학회, 2021, 31page. Schindler and Kibarian (1996)은 카탈로그를 소비자들이 구매할 때, ‘9’로 끝나는 가격과 ‘0’으로 끝나는 가격을 설정했을 때 ‘9’로 끝나는 가격에서 매출이 무려 8%나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현상을 미루어 봤을 때, 9라는 숫자는 단순한 소비자들의 선택이 아닌, ‘가격수준 효과’ 라는 것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격수준 효과라는 것은, 단수 가격으로 제시되었을 때, 실제보다 가격을 낮게 인지하여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이유는 “왼쪽 자리 효과”와 연관된다. 사람들은 오른쪽의 숫자보다, 왼쪽의 숫자에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여 보게 된다. 1,990원과 2,000원 중 ‘10원 차이가 남’이라는 사실보다, ‘하나는 천 원대이고 하나는 이천 원대’로 인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실제 가격의 차이보다 체감상으로 느끼는 가격의 차이가 더 크다는 것이다. 또한 이 가격수준 효과가 더불어, ‘이미지 효과’도 9라는 숫자와 긴밀한 연관 관계를 지닌다. 9라는 것은 불완전한 숫자이고, 이는 완전한 숫자인 0과 10에서 낮춰진, 즉 할인된 가격의 이미지가 무심결에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0보다는 9에 지갑을 열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무심결에 구매하게 되는 여러 물건에도 치밀하고 전략적인 기업의 마케팅과, 소비자들의 심리 현상이 연관되어 있다. 물론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훌륭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고려해 보았을 때, 기업의 전략에 넘어가서 지갑을 열기보다, 이를 파악하여 더욱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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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가은, 석관호. 900원 혹은 990원? 우리나라 소비재 가격의 끝자리 연구, 고려대학교, 한국마케팅학회, 2021.
양윤. (2014). 소비자 심리학.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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