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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강도연]


이름 모를 알록달록한 들꽃들과 샛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얼마 전까지 외출할 때 입었던 두꺼운 패딩은 이제 옷장 안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대신 조금 얇은 코트를 꺼내 입었다. 늘 6시쯤 먹던 저녁 식사는 이제 더 이상 깜깜한 풍경과 함께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일상들은 매서웠던 추위가 한풀 꺾이면서 비로소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이 시기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바로 클래지콰이의 'Romeo N Juliet'이라는 곡이다. 풋풋한 새내기였던 스무 살 봄에 처음 들은 노래의 멜로디에 푹 빠져서 질리도록 들은 탓에 결국 한 학기 동안 나의 통학을 책임졌던 곡이 되었다. 그 덕분에 스무 살 상반기는 이 노래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 그런지, 매년 3월만 되면 자연스레 이 노래가 생각난다. 그러면 봄꽃이 다 떨어질 때까지, 즉 질릴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노래를 듣다 보면 스무 살 봄에 동기들과 함께했던 캠퍼스에서의 추억들이 자연스레 생각난다. 결국 클래지콰이의 노래는 20대 중반이 된 지금의 나와 20대 초반의 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억의 맥락 효과



@unsplash

1979년 미국의 심리학자 존 부스 데이비스(John Booth Davies)는 음악이 인간의 '정서'를 유발하는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인간은 음악을 과거의 경험과 의식적으로 연관 짓기 때문에 감정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특별한 경험은 음악을 매개로 소환된다. 이러한 현상을 'Darling, they're playing our', 즉 '자기야, 우리 노래가 나와!' 이론이라고 한다.


인간의 기억은 맥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여행 중에 들었던 노래를 시간이 지나서 다시 들었을 때 여행 당시의 느낌과 기억을 생생히 떠올렸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음악이나 향기 등 특정한 자극을 통해 특별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기억의 맥락 효과(Context Effect)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특정한 자극을 단독 정보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상황이나 마음, 기분, 느낌을 함께 기억한다. 맥락 정보들은 회상을 도와주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히 소리 자극에 해당하는 음악은 다른 자극보다 더욱 인상적이고 강렬한 경험으로 작용한다. 신나는 댄스, 슬픈 발라드처럼 감정과 정서에 따라 '장르'를 구분 짓는 음악은 그 자체로 감정을 유발하는 정보이다. '그 음악'을 회상하면 '그 감정'도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노래로 기억하는 가장 좋았던 그 시절



미국 듀크 대학교 심리학과 데이비드 루빈(David Rubin) 박사의 연구팀은 평균 연령이 70세인 참가자 총 70명에게 여러 개의 단어를 보여준 뒤, 자신의 생애와 관련하여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이 회상한 기억은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경험이 가장 많았다. 초기 성인기인 25세 이전의 경험을 가장 오래, 그리고 또렷하게 기억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 가운데 떠올릴 수 있는 경험이 가장 많이 담긴 시기, 즉 기억나는 것이 가장 많은 시기를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이라고 한다. 전 생애에 대한 자서전적 기억을 회고하게 하였을 때, 대부분의 노인들은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의 기억이 가장 많이 회고되기 때문에 이 시기를 회고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가장 좋아하거나 즐겨 듣는 음악을 물어본 뒤 들려오는 대답을 통해 그 사람의 연배를 어림짐작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는 사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즐겨 들으며 좋아했던 노래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회고 절정기인 그 시절에 좋아했던 음악이 평생에 걸쳐 선호하는 음악 취향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만약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고 싶은 특별한 경험을 앞두고 있다면, 개인적인 취향이 듬뿍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미리 만들어보자.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기억의 부재'를 조금이나마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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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naver, 실험심리학용어사전, [회고 절정]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75005&cid=50294&categoryId=50294

하이닥 뉴스 '왜 음악을 들으면 옛 추억에 젖어들까?'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63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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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31 18: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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