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연
[The Psychology Times=이해연 ]
“망자는 빈소에서 잠깐 예를 표한 뒤엔 보통 찬밥 신세다. 죽은 뒤 찬밥 신세가 되기보다 죽기 전 지인과 따뜻한 밥을 나누고 싶었다.”
생전 장례식을 행했던 故이재락 박사가 남긴 말이다. 생전 장례식이란 보통의 죽은 뒤 치러지는 장례식이 아닌, 살아 있을 적에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며 능동적으로 치르는 장례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임종 전 가족, 지인과 함께 이른바 ‘이별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인 셈이다.
故이재락 박사는 기존의 장례식에 회의를 느꼈고 이로 인해 기존의 틀을 깬 ‘이별의식’을 직접 기획했다. ‘나의 판타스틱 장례식’. 박사가 기획한 이별의식의 이름이었다. 약 300명의 가족과 지인이 검은 옷을 입는 대신에 꽃무늬가 있는 아리따운 옷 혹은 가지각색인 평상복을 입고 참석했다.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재락 박사는 여러 사람과 함께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박사는 세상을 떠났고 가족들 외의 지인들에게는 어떠한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재락 박사는 어째서 생전 장례식을 기획하게 된 것일까. 다른 말로, 이재락 박사는 기존의 죽음과 장례식에 어떤 이유로 회의를 느꼈던 것일까.
세상은 생과 사의 끝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세상 한쪽의 병원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또 다른 한쪽의 장례식장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절차의 장례식이 이루어진다. 죽은 이들 모두가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망각한 채로, 기존에 행해지는 장례식은 모두를 같은 형식과 절차로 죽음의 길에 들어서게 한다. 정해진 빈소에서 한 번의 장례식이 잘 짜인 과정에 맞춰 끝나고 나면, 또 다른 누군가의 장례식이 같은 곳에서 같은 과정으로 진행되는 식이다. 마치 공장에서 생산품을 찍어내듯 고인의 죽음에 대한 의식이 형식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죽음이 세상 곳곳에서 대량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고인에 대한 애도와 그리움은 형식과 절차에 가리어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죽음을 맞은 주인공인 고인 자체보다는 살아 있는 자들에 의한 의례의식이 중점이 되어버렸다는 소리이다. 故이재락 박사는 이처럼 형식적으로 바쁘게 치러지는 장례식보다는, 고인의 삶과 죽음을 충분히 기릴 수 있을 만한 장례의 과정이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생전 장례식을 행한 게 아닐까.
故이재락 박사가 기존의 장례식과 죽음에 회의를 느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바쁘고 빠르게 굴러가는 세상 탓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많겠지만 그중 하나는 남겨진 자들에게 잊힐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기사 하나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죽은 자들은 너무나 쉽게 잊힌다. 우리는 현재 죽은 자를 위해 슬퍼할 시간도, 여유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인의 죽음과는 별개로 우리는 장례식 이후 대부분 각자의 자리에서 남은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늦춰지지 않기 위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죽은 자가 잊힐 시간조차 빠듯한 세상이고, 누군가를 잊는 과정조차도 어쩌면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故이재락 박사는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날을 미리 정해, 남겨질 사람들과 충분한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지 싶다.
죽음조차도 죽어가는 세상. 지금껏 말했던 세상을 이런 말로 정의해 보고 싶다. 살아 있는 자들은 삶을 살아간다기보다는 살아내고 있는 것에 가깝고, 죽은 자들은 대량생산적이고 형식적인 절차 속에서 너무나도 쉽게 찬밥 신세가 된다. 잘 죽는 과정과 방법. 우리에게는 잘 사는 방법 이전에 무엇보다 그런 방법을 아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삶의 마침표를 의미 있게 찍는 것은 우리의 지난 삶을 다독일 위로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이라는 걸 보다 더욱 다정하고 따뜻하게 일러줄 것이기 때문이다. 찬밥, 뜨거운 밥 구분하기에는 너무나 바쁘고 빠르게 굴러가는 세상이긴 한 것 같지만, 이왕이면 찬밥 신세의 죽음보다는 온기 있는 죽음이 우리에게 허락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기사
장순자 백반집 vs 윤율혜 백반집, 배가 고픈 당신의 선택은?!
참고자료
1. ohmynews, [Website], 『"제, 장례식에 초대합니다...꽃무늬 옷 입고 오세요"』, 2012,
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747528#cb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sunkite03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