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연
[The Psychology Times=유시연 ]
최근 MBC에서 제작하고 넷플릭스에서 방영해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신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과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꽤 수위가 높은 증거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런 ‘사이비 종교’를 언급하면 빼놓을 수 없는 두 사건이 있다. 바로 ‘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과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두 케이스는 ‘사이비 종교’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동시에 그러한 맹목적인 믿음이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집단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점에서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었는가. 집단적 심리 현상을 통해 이 사건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978년 미국에서는 900여 명의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한 마을에서 벌어졌는데, 그 마을의 지도자는 바로 짐 존스였다. 그는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로서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흑인 인권운동을 위해 투쟁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로 이어져 50여 명이던 그의 추종자는 불과 몇 년만에 2만 명까지 급속도로 늘어났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인민사원 순복음 그리스교회(Peoples Temple)의 신도 1천여 명을 데리고, 가이아나 공화국에 자신의 이름을 딴 ‘존스타운(Jonestown)’을 세운다. 당시 미국 사회는 흑인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는 사회였지만, 여전히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짐 존스는 백인들로 구성된 당시 미국 정부와 국가권력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며, ‘흑인 탄압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마을 경계에 무장 경비원을 주둔시키기도 했다.
인종 차별 없이 살기 좋은 마을, 존스타운.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다. 존스타운에 거주하던 몇 명의 주민이 ‘구타와 학대를 당했다’며 탈출을 시도해 성공했고, 그들은 존스타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당시 미국의 하원의원이었던 리오 라이언에게 편지로 고발한다. 라이언은 기자, 경찰을 동원하여 존스타운을 찾지만, 주민들은 ‘너무나도 살기 좋은 곳’이라며 편지와 상반된 반응을 보였고, 수사를 접고 다시 떠나려던 전날 밤, 누군가 라이언의 일행 중 기자의 팔에 ‘존스타운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남기며 다시 사건의 흐름은 바뀌게 된다. 날이 밝아 라이언 일행은 탈출 의사를 밝힌 신도들을 데리고 떠나려 하지만,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순간 존스타운의 일부 주민이 총기로 그들을 공격하며 탈출하지 못하게 된다. 이후 몇 시간 뒤, 짐 존스와 900여 명의 신도들 모두 존스타운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이 죽음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당시 존스타운에서 공식적으로 발견된 증거물에 의하면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종교 이념 아래, 이미 자신들의 종교가 지속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먼저 좋은 곳(죽은 후의 세상)으로 보내주자며 주민들이 순서대로 청산가리를 먹고 죽음을 택했다는 견해와, 당시 가이아나 검시관의 증언에 따라 시신의 팔 뒷면에서 발견된 주삿바늘로 타살되었다는 견해. 하지만 이전에도 ‘하얀밤’이라는 의식을 통해 정기적으로 독약이 든 음료를 마심으로써 자살 예행 연습을 했다는 해당 종교의 기록과, 피해자의 수가 무려 900명에 이른다는 것을 볼 때, 100% 타의로 인한 죽음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세뇌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종교적 이유에서 비롯된 집단 자살 사건은 비단 외국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1987년 8월, 경기도 용인시의 한 민속 공예품 공장에서 발생했던 집단 자살사건 역시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례가 존재한다. 박순자는 암으로 사망선고를 받았으나 이후 완치 판정을 받으면서, 이러한 기적이 열렬한 기도와,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구원파의 신자였다가 이후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이탈했고, 이후 대전에서 ‘오대양’이라는 종교를 창시하게 된다.
‘오대양’은 동시에 교주인 그녀가 운영하는 민속공예품 회사이기도 했는데, 당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88올림픽 공식 지정업체로도 선정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자수성가 사업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회사의 채권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불려주는 방식으로 신뢰도를 쌓으면서, 그들을 신도로 영입하여 종교의 크기를 늘려갔다.
당시 회사의 채권을 구매했던 한 중년부부가 채권을 되팔기 위해 대전 본사를 찾았다가 회사 직원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게 되면서, 이 회사의 실체가 ‘사이비 종교’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공장에는 물건을 생산한 흔적이 없었고, 직원들은 모두 그녀를 추종하는 신도였던 것. 본격적으로 조사가 착수되자 그녀와 세 명의 자녀, 그리고 대전 공장에 있던 80여 명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나흘 뒤, 사람들이 용인 공장에 있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간 박 씨의 남편은, 용인 공장의 천장에서 그녀와 세 자녀를 포함한 32명의 시신을 발견하고 이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사건 역시 앞서 언급된 ‘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과 더불어, 그 어떤 시신에도 저항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의문을 남겼다. 또한 시신들 모두 사지가 결박된 잠옷 또는 속옷 차림이었고, 시신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다는 당시 현장의 모습이 공개되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당시 박 씨의 남편에게 시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던 공장의 주방 직원과, 천장이 아닌 공장의 다른 구역에서 생존 상태로 발견된 49명의 신도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 씨는 당시 사업에 가장 많은 재정적 지원을 가져온 열성 신도들과 자식들만 데리고 천장으로 이동했고, 자신의 사업과 종교 모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죽음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께 천장에서 생활하던 신도들 역시, 빚더미에 나앉게 된 현실 상황뿐만 아니라 자신이 추종하던 교주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으며, 함께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집단 자살 현상은, 베르테르 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 또는 평소 존경하거나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모방 자살’ 또는 ‘자살 전염’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 현상의 이름은 독일 문학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되었는데,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여인에게 큰 실의를 느끼고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옷을 입고 죽는 주인공 베르테르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당시 유럽의 많은 청년들이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모방하고, 그에게 이입되어 모방 자살을 시도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베르테르 효과를 앞에서 소개된 교주에 뒤따른 신도들의 집단 죽음뿐만 아니라 아이돌, 배우와 같은 유명인의 자살 사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이들의 자살이 보도된 이후, 일반인의 자살이 급증하는 패턴은 전 세계적으로 종종 나타나며, 보통 언론을 접한 이후 고인의 상황에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대입하면서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영화배우 장국영의 투신 자살 이후, 그가 사망한 호텔에서 일반인이 목숨을 끊은 경우가 있다.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미국의 자살 연구학자 데이비드 필립스에 따르면, 유명인의 죽음 자체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이를 집중적으로 반복 보도하는 언론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큰 동요가 일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쪽에 가깝다고 한다. 이를 역으로 이용한 ‘파파게노 증후군’의 경우, 오히려 이러한 부정적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베르테르 증후군의 확산을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영향력이 큰 한 명의 인물이 단순한 존재에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겐 다시 살아갈 삶의 희망을 주기도 하고, ‘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 믿음이 지나치게 맹목적이거나, 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을 제대로 구분하여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정말 나를 위한 믿음일지 의심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된 두 사건 모두, ‘유색 인종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목적 하나로 시작된 믿음이 결국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적 결말을 낳았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고자 하는 사회의 시선, 유일하게 의지할 곳이었던 교주의 허무한 죽음.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과연 그들에겐 죽음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유명인의 죽음으로 인한 모방 자살은 결국 기존의 우울감이 언론의 보도로 인해 극대화되며 나타나는 결과였다. 사이비 종교의 집단 자살 역시, 만족할 수 없는 현실에서 비롯된 믿음이 가져온 비극적 결말이었다. 과연 죽음은 전염되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의 내면에 잠식된 우울감을 극단의 상태로 치닫게 하는 절망적 현실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내가 직면한 두려움으로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것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 누구에게도 각자의 노력이 옳고 그른지 함부로 판단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비록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암울할지라도, 조금은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희망이 없어 보여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 힘에 부치는 상황일수록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있기보다는, 내 옆에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책을 빠르게 결말지은 누군가를 보며, 성급히 나의 결말을 짓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힘들게 넘겨본 딱 한 장의 페이지 뒤에, 더 근사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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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1) 김종오. (2010).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연예인을 중심으로. 한국범죄심리연구, 6(3), 37-67.
2) 송윤주. (2011). 유명인 자살 보도 전후의 일반인 자살시도 양상의 비교 (Doctoral dissertation, 연세대학교 대학원).
3) 안신. (2009). 의례에 나타난 죽음이해의 다양성과 통일성: 인민사원, 도곤부족, 바하이신앙의 사례를 중심으로. 종교연구, 56, 18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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