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웅
[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글쓰기만큼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영감을 떠올리는 것, 잘 읽히는 단어와 문장을 선택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재미있게 서술하는 것 모두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좋은 글은 독자가 읽었을 때 이해가 쉽고 술술 읽히는 글인데 이것 또한 자신이 글 쓰는 주제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 쓰기 어렵다.
모니터 앞의 깜빡이는 커서를 한없이 바라본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내가 선택한 단어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지,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떤 느낌을 받을지 생각하며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한다. 무언가 머리에서 번뜩이는 날은 글이 막힘없이 써지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이 정리가 잘 되지 않거나 표현력이 부족해서 글이 이어지지 않을 때는 좌절감을 맛본다.
이렇듯 정성을 들이고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한 편의 글이 써지고, 책이 만들어진다. 결과물은 텍스트가 출력된 종이지만, 그 종이 속 한 글자, 한 글자에는 작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책의 문장을 접한 독자들은 작가의 마음과 교감하며 울고 웃으며 위로받고 또 다른 글을 기다리게 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그 순간을 위해서 인내의 과정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간호도 글쓰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한 사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시간도 많이 필요하므로 인내가 요구되고 간호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환자를 향한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마음 또한 필수적이다. 그리고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간호도 겉으로 보기에는 성과가 잘 나타나 보이지 않는다.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간호를 써보자면 환자를 사정하며 처음 인사를 건네는 순간부터 밤낮 구분 없이 환자 곁을 지키며 가래를 뽑아주고, X-ray촬영을 돕고, 약물을 투여하고, 소독하고, 몸을 씻겨주고, 욕창이 생길까 봐 2~3시간마다 체위를 바꿔주고, 용변을 치워주고,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불편을 호소하는 것을 해결해주고, 환자 주변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 등이 있다.
간호를 하는 동안 인내심은 자연스레 길러진다. 일의 특성상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늘 긴장감과 냉정함을 유지한 채 일을 해나가는데, 내가 우선순위를 세워서 일하는 동안 환자분이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환자분이 요구사항을 말씀하시면 하던 일을 멈추고 먼저 해결해드리기도 하고, 수시로 변하는 처방 화면을 확인하며 일의 우선순위를 끊임없이 바꾸면서 일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계획이 틀어지는 건 다반사이고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일을 해나가므로 타인을 허용해 줄 마음속 여유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환자분의 상태가 좋아지면 다행인데, 이렇게 내적 고민과 갈등 가운데 환자분 곁을 지키며 하나하나씩 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섬망 증상이 나타난 환자분 때문에 간호사들의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생기거나, 환자의 상태 호전의 속도가 매우 더디거나, 오히려 상태가 악화되는 모습을 목격하는 날에는 그렇게 허탈한 순간이 따로 없다.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는커녕 변하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 좌절감을 맛보게 한다.
그럼에도 간호를 계속해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시간이 많이 들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지만 그 과정 가운데 마주치는 환자의 아픔을 헤아리는 순간과, 지금 환자분 곁에서 자리를 지키며 간호하는 순간이 쌓이다 보면 환자분이 회복되어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쁜 순간을 함께 마주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환자분에게는 간호사로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옆에서 최선의 지식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간호하는 것이 환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글쓰기와 간호는 닮았다. 둘 다 인내의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결과로 인해 살면서 타인과 나 자신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순간을 더 많이 마주칠 수 있다면 계속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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