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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허정윤 ]


장자의 허주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어느 빈 배가 와서 부딪히면 그 사람은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배에 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피하라고 소리치다가 듣지 못하면 더 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낼 것이다. 화라는 감정을 표출한 것은 그 배 안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며, 만일 그 배가 빈 배였다면 그 사람은 소리를 지르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화의 국가, 한국


“화병 나서 죽겠다.” 속이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화병’은 한국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 미국 정신 의학회에서도 한국식 표기 ‘화병(Hwa-Byung)'을 공식 표기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화'라는 감정이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보편적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매일 화가 나 있는 것일까? 평온한 상태에 있다가도 사소한 일에 나도 모르게 내면의 아우성을 치거나 외부로 분노를 표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못된 상황을 교정하고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화는 여러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자신의 분노를 잘 다루려면 분노의 유형을 알며 내면에 분노가 일어나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충분히 느껴주어야 하는 억제된 분노


먼저 억제된 분노가 있다. 이 분노는 위반이나 학대, 배신과 관련될 수 있고 상실에 대한 슬픔이 묻어있는 분노이다. 학대나 외상 등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분노를 겪는 경우,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대부분인데, 그 감정이 억압되지 않도록 대면하고 충분히 감정을 느껴주고 표출할 필요가 있다.(Leslie&Sandra, 2003)


위의 억제된 분노 상황에서 바깥의 위협, 위반 상황으로부터 나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부적응적인 분노가 나타나게 된다. 위의 분노와 다른 점은 단어처럼 부적응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인데, 제때 해소되지 못한 분노가 이후의 삶에서 다른 형태로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를 받고 이해받은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 성장하였을 때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의 권위자가 조금이라도 비합리적으로 대하면 엄청난 분노가 올라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노의 경우에는 내가 자각하지 못했던 과거의 적응적 분노에 접근하여 내가 수용하지 못했던 분노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적응적이지 못한 자신의 정서 촉발에 접근해서 적응적인 분노를 충분히 느껴 주어야 한다.



다른 감정을 덮는 분노


‘이차적 분노’라는 분노도 있는데, 이는 어떤 상황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감정이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인 경우이다. 화를 벌컥 내버리면서 어떤 일에 대해 내가 받은 상처를 가리는 것이 그 예시이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냄으로써 내가 죄책감이나 우울, 내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덮어두는 것이다.(Leslie&Sandra, 2003)


이 같은 경우에는 화를 더 내도록 하기보다는 화가 가리고 있는 다른 감정이 무엇일까, 그 감정에 접근해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정서를 느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화를 이용하기


이 말고도 다른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분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정말 화가 난 것은 아닌데, 특정 상황에서 화를 내면 유리한 경우 화를 내서 내게 이득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내가 정말 화가 난 것인지 점검해보고 느끼지 않는 감정에 대해 부가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화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장자의 빈 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세상의 강을 건너가는 그대가 자신의 배를 비울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를 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로 장자는 이 이야기를 끝맺는다.


우리는 외부의 어떤 것이 나를 화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화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화는 조건에 맞추어 일어난다.

이제는 나의 화가 어떤 유형인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에서 화가 불쑥 일어난다면, 장자의 '허주' 이야기를 떠올려 이 화가 정말 외부의 사건 때문인지, 일으키지 않아도 될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지를 생각해보고, 혹 나도 모르는 새에 이미 화가 내 마음을 점령했다면, 그것이 어떤 유형의 화인지 구분해 그에 해당하는 대처 방안으로 화를 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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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lie. S. Greenberg, Sandra C. Paivio.(2003).Working with Emotions in Psychotherapy. Guilfor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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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4-28 22: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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