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상담을 하다보면 내담자와 상담자 모두 예상치 못한 시기에 상담이 잘 풀릴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순간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무엇이 상담효과를 나게 했는가?’를 찾아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거의 매일, 상담실에서 울며 웃으며 발견한 <상담을 잘 풀리게 하는 잠정적인 요인> 중 하나는 출석률이다. 잠정적 요인이라고 쓴 이유는 이 가설은 전문가로서 길러온 직관을 통해 성찰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직관적 데이터라 정량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상담을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출석률이라고? 어떻게 정량적 근거도 없이 이런 가설이 나왔는지 살펴보자.
1. 우리 삶에 중요한 목표일수록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요.
전문적인 상담(counseling)이란 내담자와 상담자가 상담이라는 과정을 통해 내담자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로 합의하고 하는 활동이다. 그러니까 상담의 목표란 대게, 내담자가 원하는 삶을 그리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내면의 요인을 줄이거나, 원하는 삶을 가꿀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한 동기이자 이상향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화가 나는 자기의 밑 마음은 이해하되 표현은 조절해보는 것, 회피하며 맞추어온 인간관계가 만들어낸 부작용을 직면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보는 것, 그러다 갈등이 일어나도 해결하려고 끝까지 노력해 보는 것, 내 욕구를 한 번쯤은 양보해 자기애적인 내면의 아이를 키워보는 것, 불안할 때 공격하지 말고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것, 잘하지 못하는 자기가 드러나도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보는 것 등이다. 자발적으로 정한 목표이지만 목표로 가는 과정은 참 어렵다. 각자에게 익숙하게 자리 잡은 삶의 패턴은 사실은 각자의 생존방식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 방식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혹시, 한 번 정도 다르게 해 봐도, 죽거나, 망신당하거나, 망하거나, 병나거나 그러진 않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정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안정감이 생길 때까지 필요한 시간은 모두 다르다.
2. 변화는 가속도의 법칙을 따르니까요.
아이와 집에서 캠핑 놀이를 할 때면 밤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달고나를 만든다. 국자에 설탕 한 숟가락을 넣고 한참을 불에 달구면 설탕이 녹기 시작한다. 고체인 설탕이 투명한 액체로 변하기 시작하면 이때부터는 한눈을 팔 수가 없다. 달콤한 변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자칫하면 타버리기 쉬우니까 말이다. 소다 한 꼬집을 재빠르게 넣어서 젓가락으로 휘젓고 유연한 움직임으로 준비한 자리에 탁! 내려놓는 순간, 그 순간이 짜릿한 완성을 맛보는 순간인데 달고나 만들기에서 시간상으로 가장 오래 걸리는 일은 아쉽게도 가장 재미없는, 고체 설탕에 불을 쬐어 액체로 만드는 일이다.
세상 대부분의 변화는 달고나처럼 가속도의 법칙을 따른다. 내면의 변화와 성숙도 그렇다. 내가 원하는 상태가 내 눈앞에 확인되기 위해서는 상처받은 과거 내면아이도 만나야 하고, 자기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재료가 부족하면 지식과 경험으로 재료도 넣어야 하고, 시험 삼아 모의 연습도 몇 번 해보아야 한다. 그러다 번뜩 ‘와 나 컸네’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부터는 예상하지 못하는 삶의 구석까지 확장적인 변화가 번지는데 이런 기쁨은 시간과 경험으로만 살 수 있는 희열이다. 초기과정은 언제나 벅차고 힘드니까, 버티기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개구리가 울기 시작한 초여름, 창문을 활짝 열고 사랑하는 사람과 달고나를 만들어 먹기를 당부한다. 반짝이는 설탕 가루에 자기를 동일시하면서 말이다.
3. 같은 일을 반복하면 생기는 일
출석률이라는 어휘를 사용했지만, 변화를 만드는 잠정적 요인이 꼭 물리적인 출석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헌신한 가치를 이루는 과정에 자기의 몸과 마음을 놓는 행위, 무기력하고 불안한 시간이 있더라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 자리에서 쉬는 행위, 여력이 생기면 조금씩이라도 가던 길을 반복하는 행위.
결국 생존방식 너머에 있는 성숙의 모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비를 넘어서는 순간의 선택들이 쌓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늘 거기 존재하는 동네 목련도, 매일같이 거기서 목련과 사람을 보는 나도, 진정성있게 살겠다고 상담실에서 매주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요?
언젠가는 꽃이 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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