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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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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 문명 사회에서, 단연코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 첨단 기술, 다름 아닌 ‘속도’!

그런데 누군가의 ‘톡 반응 속도’는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늘도 그들의 스마트폰 속 SNS에 새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안 읽음’ 표시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내 이야기인가?’ 혹은 ‘어떻게 알았지?’ 라고 생각을 한 사람이거나, 그러한 누군가 때문에 ‘대체 왜 답장을 안 읽는(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답답함과 분노, 궁금증을 함께 느끼고 있는 사람, 둘 중 하나일 확률이 매우 클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의 SNS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톡’으로 하는 연락을 기피하다가 안읽씹으로 이어지는 현상,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톡포비아(talk phobia)’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포비아’라는 이름으로 현대 사회인들에게 하나의 공포증으로서 자리 잡을 정도로 말이다. 

 

 


1. ‘콜포비아’ 에서, ‘톡포비아’ 로까지

 

 

톡포비아는 갑작스레 등장한 이해할 수 없는 공포증이 아니다. 이미 한 5년 전부터, ‘콜포비아(call phobia):전화 통화 기피 증상’ 는 우리 사회 속에 하나의 공포증으로서 점차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포비아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전화는 실시간이라 답변을 미리 생각해 둘 수 없기에 불편하며, 자신의 음성 및 그에 내포된 감정, 그리고 주변 소음이 고스란히 통화 상대에게 전달된다는 점이 공포라고 공통적으로 말하곤 한다.

 

그리고 이 당시에도 ‘톡’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의 목소리 또한 존재했다. 

사람들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카카오톡은 ‘멀티 프로필’ 기능을 도입했다. 멀티 프로필이 연락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지나치게 노출되던 사생활로부터 스스로를 감쌀 하나의 얇은 가면이 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톡포비아’는 사생활 이슈의 측면에서 사람들을 더욱더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은 이미 전 국민이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연결 수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톡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하는 단순 연락 수단에 그치지 않을뿐더러 다양한 기능 또한 연동되는, ‘스마트폰을 새로 개통한다면 가장 먼저 설치해야 하는 앱 1번’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이 앱이 깔려있지 않으면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사용하는 앱이니까, 도태되지 않으려면 지울 수도 없는데, 사회생활을 위해서 연락을 죄다 끊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카톡 앱 모서리 속 빨간 동그라미, 그 안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묘하게 신경이 거슬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현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빨간 알림을 지워보려고 어떻게든 답장을 몇 시간 미루다가 그것이 며칠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늦어진 만큼 성의 있는 답장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이 주기를 더욱 늘려갔다. 

 

 


2. 대화를 ‘외주’ 줄 수 있으니까

 

이제 우리는 카톡에 들어가기만 하면, 굳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알고 싶지 않아도 될 별로 친하지 않은 지인들의 시답잖은 정보들까지 모두 알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의 자잘한 프로필 업데이트 내역까지도 뜨는데, 구태여 빨간 표시를 띄워 주어 신경에 거슬리게까지 만든다. 그러니까, 타인의 근황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 안부 인사 없이 그저 클릭 한 번이면 되는 기능이 생겼다.


인간관계는 다양한 관계로 묶여 있는데, 단순히 모두를 ‘친구’로 묶고 하나로 뭉뚱그려 버렸으니, 어째 21세기 사회인들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쉬워지고만 있다.

 

슬프게도 이렇게 심플하고 편리해질수록, 우리의 톡포비아 증상은 악화된다. 카톡이 새로 도입한 편리한 기능이 오히려 개개인의 ‘톡’은 점차 줄어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연락하고, 대화해야 알 수 있던 것들을 굳이 그러지 않아도 손쉽게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공감을 전하기 위해 필요했던 대화의 많은 기능들을, SNS에 외주를 줘 버린 상태이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너무나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이모티콘’들이 존재하고, 이것으로도 부족하면 우리는 카톡 채팅 방 내에서 ‘샵 검색 기능’을 통해 적절한 ‘짤’을 바로 상대에게 보낼 수 있다. 최근에는 ‘공감 기능’까지 생겨서, 굳이 답하기 애매할 때는 단순한 반응 중 하나를 골라 찍음으로써, 간단한 성의 표시까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화란, 서로가 필연적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그러나 ‘톡’을 통한 대화의 핵심 문제는, 대화에 오해의 여지가 더 많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책임감을 묽힌다’라는 점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감이란 상대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책임해지지 않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 ‘톡포비아’ 속 숨겨진 현대 사회의 문제

 

앞서 말했듯이, 카톡은 사적 대화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의 많은 영역들을 차지하고 있게 되었다. 카톡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찌 되었건 대화해야만 하는 ‘톡방’들은 무수하고, 중간중간 각종 프로모션이나 할인쿠폰을 받기 위해 브랜드 카톡방에도 들어가 주어야만 하니, 현대인들의 톡포비아란 그저 ‘연결되지 않을 권리’만 보장받는다고 끝인 것이 아니다.


이제는 메신저 자체가 ‘돈’이 되어 버린 세상이다. 카톡이 없어진다면 누군가는 실직을 할 것이고, 어떤 기업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릴 것이다.

 

카톡은 경제뿐만이 아니라, 권력과 권리의 장소이기도 하다. 톡포비아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연락을 기피하면서도 아예 카톡을 지우지는 못한다. 그야 당연하다. 카톡이 없으면 직장, 학교, 모든 사회에서 고립되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테니까. 거의 필수재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톡포비아를 앓는 사람들은 그 상당수가 젊은 세대이다. 그들이 기성세대에 비해 사회화가 덜 되었다거나 미숙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메신저 플랫폼 등을 통해 초연결 노동과 갑질,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는 청년의 현실을 현재 ‘톡포비아’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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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도우리. (2023).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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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4-28 23: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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