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면
[The Psychology Times=최광면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중략)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생략)”
‘이름’ 에 대해 생각하면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 구절이 떠오릅니다. 제가 이 시를 처음 듣게 된 때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 시절이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뭔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던 그 시절, 부르기 쉽지 않은 나의 이름에 부담을 느끼던 그 감성에 이 시는 나 자신에 대한 어떤 존재감으로 가슴 설레게 했습니다.
저는 이 시 구절의 의미에 대해, 이름에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빛깔과 향기가 담겨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 고유함으로 누군가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욕구위계에 대해 연구한 매슬로우는 이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권리임과 동시에 동기를 부여하고,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의 심리를 충족시켜 준다(Abraham H. Maslow, Motivation and Personality, Harper and Row Publishers, 1970. p.28).
박상원(2019)은, 이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불리고 죽음 이후에도 평가되기 때문에 개인의 삶에서 뗄 수 없는 하나의 정체성을 이루며 따라서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는 이름의 문화가 만들어져야 사람들은 그 이름을 되새기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한국인 이름의 권력, 세대, 운명에 관한 연구)
저는 종종 고객과의 코칭 대화 상황에서 고객에게 자신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곤 합니다.
“고객님의 이름자에는 어떤 뜻이 있으신가요?”, “자신의 이름의 뜻을 정의해 보신다면 어떻게 정의해보고 싶으세요?”
이 낯선 질문에 다소 당황함을 보이던 고객은 이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는 추가적인 질문을 이어서 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말씀하신 이름의 뜻에 맞게 행동했던 경험을 한 가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이에 고객은 자신의 이름을 정의할 때 막연했던 기억들을 선명히 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고객님은 이름의 뜻에 맞는 어떤 리더가 되고 싶으십니까?”
이 질문에 고객은 참 멋진 리더상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코치로부터 박수를 받습니다.
서사정체성(narrative identity)은 이야기로 표현된 개인의 정체성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삶의 이야기를 말하고 재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을 말합니다(폴 리쾨르, 1991). 그리 길지 않은 대화이지만 고객은 자기 이름의 의미와 의미가 부여된 삶의 이야기(내러티브)을 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박선웅(2020)은 그의 저서 정체성의 심리학에서,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 자신의 가치를 내부에서 발견하는 과정인 자기수용(self-acceptance)을 통해 튼튼한 자존감(secure self-esteem)이 형성된다고 하였습니다.
김춘수님의 시를 통해 생각해 본 것처럼, 나만의 고유한 빛깔과 향기를 담고 있는 이름을 통해 누군가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튼튼한 자존감을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가 시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부모로부터 두 가지 유산(?)을 받고 또 자식에게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성격이고 또 하나는 바로 이름입니다.
부모님이 저에게 이름을 지어주실 때를 상상해 봅니다. 아마도 자식이 이 세상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과 의미를 담아 지으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내 자식의 이름을 지었을 당시를 돌아보고 그때의 마음을 살펴보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에는 타고난 성격이 반영된 삶의 이야기들이 녹아 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성격은 나만의 고유한 재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삶에서 강점을 개발하고, 자신의 강점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그래서 사랑받는 존재로 이름 불리우는 것, 이것이 부모님이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실 때 바랬던 바일 것이고 또 내가 자식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튼튼한 자존감, 튼튼한 자기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가요? 또 어떻게 정의해 보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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