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교
[The Psychology Times=조은교 ]
오래 전의 경험담을 풀어보고자 한다. 집에 갓 튀긴 치킨이 도착했다. 동생이 신나게 포장을 뜯고 먹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닭다리를 신명 나게 집어들고서 그 아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다름 아닌 “이제부터 바삭바삭 치킨 ASMR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였다. 생각보다 꽤 들어줄 만했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그 아이는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지만, 여전히 그 때 가족들이 칭찬해준 기억이 좋았는지 무언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음식이 있으면 주저 없이 ASMR 콘텐츠를 라이브로 만들어준다.
이제는 만인의 콘텐츠가 되어버린 ASMR. 위에서 소개한 나의 경험담도 이에 해당한다. ASMR이란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을 뜻하는 영어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를 말하는 단어로, 주로 시각 또는 청각 자극을 활용해서 심리적인 안정을 이끌어낸다. 대체로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접해볼 수 있는데, 그 주제는 먹방부터 시작해서 롤플레잉, 메이크업, 공부, 반려동물 등으로 굉장히 다양하다. 아직 ASMR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면, 어렸을 적 부모님 무릎에 누워 귓가를 맡기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눈을 잠시 감고 면봉이나 귀이개로 슬슬 귀 안 쪽을 파주시던 그 느낌을 생각해보면, 대략 ASMR을 통해 어떤 감각을 느낄 수 있을지 감이 올 것이다.
ASMR의 바탕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팅글(tingle)이다. 이 팅글은 무언가 뇌리에 꽂혀서 기분 좋게 소름이 돋는 느낌을 일컫는다. 대체로 무언가를 머릿속으로 터득했을 때, 또는 감각적으로 짜릿함을 느꼈을 때, 우리는 팅글을 느꼈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팅글을 느끼는 요소 (일명 트리거, trigger라고 한다)와 팅글을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상이하다. 포털 사이트에 ‘팅글’을 검색했을 때, 연관 검색어로 ‘팅글이 느껴지지 않을 때’ 가 따라나올 정도다. 따라서 같은 ASMR 영상인데도 시청자마다 팅글을 느끼는 구간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팅글들로 가득찬 ASMR은 정말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까? ASMR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남기는지에 대해 검증하고자 했던 이성준(2019)의 연구에 따르면, ASMR 콘텐츠가 집중, 불면증 해소 등의 욕구들을 다른 콘텐츠들보다 훨씬 더 많이 충족시키고 있고, 신경증을 조절하는 효과도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비록 자기보고식 설문조사의 결과를 담은 데이터라서 한계가 존재하겠지만, 사람들에게 그저 안정감을 심어준다는 ASMR의 특성 하나는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기분 좋은 팅글들의 바다인 ASMR 콘텐츠. 예전보다는 이런 ASMR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확실히 높아진 모양이다. 방송사 엠넷의 유튜브 채널 M2에서는 정기 컨텐츠로 ‘팅글 인터뷰’라는 코너를 제작해서 업로드하고 있는데, 여러 아이돌들을 초청해서 시청각적 팅글을 만들어내게끔 하고 있다. 조회수가 무려 600만이 넘는 영상도 다수 있는 만큼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ASMR 마니아들에게도 반응이 좋은 콘텐츠임이 증명되었다.
필자는 비교적 일찍 ASMR 콘텐츠를 접해, 벌써 햇수로 9년차 ASMR 감상 이력을 갖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수학 같이 사람들이 유튜브 댓글에 자신의 ‘팅글 포인트’ 라면서 남긴 타임 스탬프를 하나하나 눌러보며 그 느낌에 공감하고, 정말 마음에 드는 영상은 재생목록에 추가해둔다. 유튜브 특성상 한 영상을 클릭하면 그 영상과 관련된 추천 영상들을 띄워주는데, 한 번 파도타기를 시작하면 하루 종일 유튜브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쌓아온 ASMR와의 인연을 토대로, 필자의 유튜브 계정에는 공부용 ASMR, 노토킹 (no-talking) ASMR 등 용도와 특징에 따른 재생목록들이 만들어져 있고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ASMR을 통해 필자의 인생은 조금씩 변화를 맞았다. 노래를 들어야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내가 좀 더 다양한 청각적인 환경에서도 집중을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는 실제적인 학습 향상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10년 넘게 손톱을 뜯는 안 좋은 습관을 떨쳐내지 못했던 내가, 단순히 ASMR 유튜버들처럼 병이나 플라스틱 통에 손가락 태핑을 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강한 의지를 품고 손톱을 길러내기 시작한 것도 모두 다 ASMR 덕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추구하게 된 기준이 생긴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집중을 위한 원동력이나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면, 시간 날 때 ASMR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 여러분의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드러누울 수 있는 들판이 될 지도 모른다.
지난기사
[참고문헌]
경향신문 [Website]. (2016). URL: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606161556001
아레나코리아 [Website]. (2021). URL: https://www.arenakorea.com/arena/article/48168
이성준. (2019). ASMR 콘텐츠 지속적 사용 영향 요인 탐색: 신경증의 조절효과를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 19(10), 112-125.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rima161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