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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이연수 ]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믿음이 가는가. 아마 이렇게만 듣는다면 대부분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실에서는 대다수가 이 말을 믿는다. E와 I, N과 S, F와 T, J와 P. 고작 이 8개의 알파벳을 믿는다.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이 알파벳들은 성격 유형 검사 MBTI의 기본 요소이다. 60개 남짓한 문제를 약 10분간 풀고 나면 ENFP, ISTJ와 같은 네 글자가 당신을 설명한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잘하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모두가 한 번쯤 고민해 보는 나에 대한 문제는 몹시 어렵다. 세상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지만, 모순되게도 타인만큼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 자신에 대해 확실하게 규정을 내려준다면, 그리고 그게 정확하다면 얼마나 편할까.

 

최근 1~20대들은 본인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MBTI를 선택했다. 마치 개인 관찰 일기처럼 자세한 설명은 신뢰를 안 할 수가 없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이는 금세 유행이 되었다. 유행을 넘어서 자신을 쉽고 빠르게 설명할 수 있는 제2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틀 속에 갇히게 되다



MBTI 열풍이 불자, 다양한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디즈니 캐릭터에 비유한 것, 유형별 궁합 표, 유형에 따른 상황 대처법 등 수많은 콘텐츠는 보는 사람에게 편견을 심어주었다. ‘E는 적극적이지만, I는 소극적이다.’ 자주 사용되는 이 문장 하나로 알 수 있다. 이미 외향 쪽으로 가치가 편중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검사를 할 때 스스로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 사람들은 본인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 그만큼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원하는 성향이 되기 위해 자신의 성격이 아닌 이상향의 성격대로 답변하게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원하던 성향과 본인이 일치한다고 믿고 싶어 하는 “바넘 효과”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본질을 완전히 잃게 된다. 본인을 파악하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한 검사는 오히려 자신을 틀 속에 가두는 방향으로 변질한다. 

 



양날의 검



물론, MBTI가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쉽고 빠르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고, 대화 주제로 쓸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상대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단의 선이 모호한 게 문제다. 과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에게도 틀을 씌워버린다. 생각한 상대방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은 다를 수도 있지만 이미 색안경이 낀 후다. 어쩌면 그런 과정에서 현재의 인맥보다 더 잘 맞을 수도 있는 사람을 보내버렸을지도 모른다. 

 



사실 다 거짓이라고?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엔 허점이 있었다. 모두가 해온 모 무료 사이트의 검사는 실제 검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본 공식 문항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문장을 구현해 진짜와 유사한 코드를 가진 가짜 검사이다. 우리는 왜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로 본인을, 그리고 서로를 규정지었는가.

 

가짜 검사에 재미 그 이상의 용도를 찾을 필요는 없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70억 인구가 있고, 70억 개의 세상이 있다. 그 많은 세상을 16개에 끼워 맞출 수 없는 노릇이다. 오로지 나만의 세상을 포기하고, 16개 중 하나의 세상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지는 않은가. 본인을 찾고 있는지 잃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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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남수현 기자, 정희윤 기자, “"인터넷 MBTI는 도용된 가짜 검사"···전문가가 본 오해와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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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6-05 15: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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