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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것이라 믿었으므로 마음껏 미워하고 사랑했다 - 투사적 동일시의 비밀 2
  • 기사등록 2023-06-02 17: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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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가시나무새 중>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애초에 ‘나는 나이고 너는 너라서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쉬다 만나자’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시나무새>의 애절한 가사를 들어도 별 감동이 없을 텐데, 사람은 만나면 서로의 내면에 상대를 초대하고 들어가는 신기한 시도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자기가 먼저 초대해 놓고 밀어내질 않나, 먼저 거절해놓고는 거절당할까 두려워하질 않나, 자발적으로 끊어내고는 세상이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질 않나, 온갖 모순과 역설이 존재하는 공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호를 만들어 유대감을 유지할 뿐 아니라 복잡하게도 만들어내는 인간은, 이 사실을 선호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결국에는 관계적인 존재라는 결론이 나온다. 

 

관계적 인간은 ‘어지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내 마음’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도 혼자 처리하기보다는 관계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투사적 동일시’는 관계 안에서 태어난 인간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문제인 내면의 어려움을 타인의 존재를 빌려 해소하려는 무의식적 노력이다. 투사적 동일시를 간단하게 3단계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내면의 조각을 타인에게 내보내 비워낸다. 

2) 그 조각이 타인의 것이라 믿으며 맘껏 미워하거나 사랑한다. (하지만 조각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

3) 조각을 자기 내면 수준에 담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다시 가져온다. 

 

단어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이 있다면 1)부터 3)까지의 문장만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문장을 읽으며 과거 연애사가 떠올랐거나, 나와 배우자 사이의 어떤 에피소드가 떠올랐다면 여러분은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는 어려운 심리용어를 이미 삶을 통해 배워왔다. 

 

 


1. 당신의 일부였던 조각은 이제 관계 안에 존재한다. 



자기의 일부를 밀어내고 다시 가져오는 상호작용은 상대방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기대와 욕구가 서로 깊이 얽혀있는 사이, 예를 들어 배우자, 연인, 부모와 자녀, 상담자와 내담자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결국엔 너도 나를 외롭게 하는구나.”

 

실체 없는 외로움은 슬픈 어조를 타고 너와 나의 관계로 흘러간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상대는 독특한 자신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외롭게 하는 어떤 대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똑같이 외로워진다. 그렇지만 외로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충분히 연습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면의 외로움은 충분히 미워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괴로운 감정이다. 그는 외로움을 자기 밖으로 밀어내고 나서야 마음껏 비탄할 수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분노를 투사한다.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해” 

 

억울한 마음으로 타오르는 적개심은 사실은 자기 마음의 산물이다. 억울함의 소유자가 사실 차가운 시선은 자기가 타인을 보는 시선임을 깨달을 즈음, 잠시 분노를 받아준 사람이 있어서 자기가 만든 적개심 중에도 소멸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그는 억울한 세상에서 벗어난다. 




 2. 남의 것이라 믿었으므로 마음껏 미워하고 사랑했다.



상담과 마음 연구를 하며 내가 형성한 신념 중 하나는 ‘사람은 자기한테 이로운 일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투사적 동일시를 일으킨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투사하는 감정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내면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알아차리려면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보이지 않는 욕구들이 만나서 나타나는 문제라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갈등이 눈에 띄게 나타나야 한다.

 

"투사적 동일시가 딱이잖아?"

 

수유를 하면 왜 그런지는 몰라도 아기들이 젖병을 잇몸으로 꽉 물어버릴 때가 있다. 모유 수유 중이라면 엄마에게 눈물이 찔끔 나는 순간이고 젖병을 물렸다면은 인간의 공격성을 관찰할 만한 행동이다. 엄마의 소유물이니 실컷 물었지 제 것이었으면 그랬겠나, 아직 미숙한 상태에서 인간이 무언가를 실컷 미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은 무언가가 ‘남의 것’이라고 여겨질 때이다. 외로움도, 분노도, 부당함도, 공격성도, 심지어 사랑받는 기쁨조차도 인간은 남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을 때 마음껏 미워하고 사랑할 수 있다. 

 

 


3. 조각은 주인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인간은 공격성을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는 존재다. 단, 어른과 어른이 주고받는 투사적 동일시에는 지켜야 할 조건이 있다. 

 

1) 자기가 던지는 조각이 무엇인지 알고 한다. 

2) 의존과 통제를 동시에 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감사를 전한다. 

3) 투사적 동일시에는 졸업 기한이 있다. 내면의 그릇을 키워 조각을 다듬고 나서는 다시 가져간다. 

 

부부와 연인 사이에서는, 내면의 조각을 서로에게 심어 놓고 의존과 통제를 하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동시에 만들어낸다 .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특별히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가리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내 안에 있어야 했을 어지러움을 잠시 맡아주는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태도는 보여야 상대방도 사랑을 지속할 기운이 생길 것이다. 내면의 힘이 이다지도 부족한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빌려서 의존하고, 그렇게 키운 힘으로 타인을 공격하며 자기 존재를 확인하니 인간관계가 어려울 수밖에.  

 

투사적 동일시가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 중 하나라면 허락되는 시간 동안 열심히 확인하며 자기 그릇을 키우기를 바란다. 곧, 다른 누군가의 조각을 담아주어야 할 때가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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