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인들은 멋진 풍경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우와, 외국 같아요~!", "우리나라에 이런 데가 있었어?", "우리나라 안 같애~"..

이런 대답은 우리나라에는 멋진 풍경이 있을 리가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한국엔 볼 게 없다고 말한다. 때묻지 않은 광활한 자연의 북미,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동남아시아의 바다, 인간을 겸손하게 하는 히말라야의 설산, 가슴이 탁 트이는 몽골의 초원..

이게 산이지...(출처: 여행매거진 트래비)

이런 데에 비해 우리나라는 코딱지만한 땅덩어리에 성냥갑같은 아파트나 늘어서있고,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모텔 투성이, 바다는 땟구정물에 물반 사람반이요, 야트막한 산들은 동네 뒷산이고 강아지 오줌처럼 찔찔 흐르는 물줄기가 폭포. 이런 것들을 보느니 외국에 나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자기 동네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전에 사는데 대전은 울산과 함께 한국의 대표 노잼도시로 꼽힌다. 볼 것도 할 것도 없어서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얘긴데 그런 말을 만든 게 대전사람들이다. 다른 지역에서 친구들이 오면 몇 군데 없는 번화가에서 조금 놀다가 성심당에서 빵 사서 보내면 끝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성심당은 대전에 있는 국내 3대 빵집으로 꼽히는 명소다. 대전에 좀 오래 산 분들은 성심당도 맛없어서 안 가신단다. 인터넷에는 우리 동네 볼 거 하나도 없고 맛집으로 알려진 집들도 다 별로라는 지역정보(?)들이 넘쳐난다.



우리가 가장 빨리 불행해지는 방법은 자신이 사는 곳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지옥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헬조선. 우리의 행복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용어다. 스스로 지옥에 산다고 믿는 이들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없다.

물론 대한민국이 지상낙원은 아니다. 한국은 사회안전망이나 최저임금, 노동시간 등 여러 객관적인 지표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실제로 2018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행복을 낮추는 이유는 지나친 경쟁과 취약한 사회통합, 개인의 적성과 소질에 맞지 않는 직업선택, 부정부패와 정책 운용 절차의 불투명성 등이었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꾸준히 개선되어 왔고 또 나아질 수 있는 분야들인데 반해, 자신이 생지옥에 산다는 생각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우리를 지옥의 주민으로 만드는 마음의 습관들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어딘가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기사에는 거의 ‘한국엔 할 게 없어서 그런다’는 댓글이 발견된다. 그것도 높은 추천수로. 그렇다. 작년 산천어 축제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175만명이나 몰렸다. 주말에 산들이 등산객으로 가득차는 이유도 갈 데가 없어서이고 강과 바다에 낚시꾼들이 몰리는 이유도 갈 데가 없어서다.

프로야구 관객이 몇백만 명이 넘는 이유는 ‘하고 놀 게 없어서’이고, 이 좁은 나라에 천만 영화가 많이 나오는 이유 또한 ‘딱히 할 게 없어서’다. 한국인들이 게임대회에서 우승을 휩쓰는 것은 놀 게 없으면 청소년들이 게임밖에 할 게 없어서 그렇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건전한 놀이문화가 없어서 그렇고, 뮤지션들의 공연에서 떼창을 부르는 이유도 평소에 하고 놀게 없어서 그렇다.


할 일이 없어서 산에 가시는 분들..?

가만.. 하고 놀 게 없다고? 산에도 가고 낚시도 하고 영화도 보고 야구도 보러 가고 술도 마시고 공연도 보러 가는데? 할 게 없고 갈 데가 없어서 이런다는 현상들을 쭈욱 모아놨더니 세상에, 한국인들은 이렇게 다양한 걸 하고 있다.

이래도 할 게 없다는 사람들은 뭘 더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없는 마음의 습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즐거운 일, 좋은 일에서 끝내 부정적인 면을 찾아내고야 만다. 영화 극한직업이 천육백만명을 넘었다. 한국 코미디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다. 이런 영화를 보고도 행복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대놓고 웃기려고 만들어서 흥행한 거다. 한국 영화는 다 신파 아니냐.’ ‘얼마나 웃을 일이 없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봤겠느냐. 씁쓸하다’, ‘영화 스탭들 대우가 얼마나 형편없는줄 아느냐, 저렇게 흥행해도 돈은 버는 놈들만 번다’.

해외 스포츠 스타나 자신의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유명인의 소식을 보면, ‘한국에서는 저런 사람이 나올 수 없다. 부정부패로 안 썩은 곳이 없고 한국사람들은 서로 깎아내리려고 안달이 나 있기 때문에’..라고 울분을 토하고, 반대로 한국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람이 나와도, ‘저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더 유명해졌을 텐데 하필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서 안됐다.’는 식의 반응이 뒤따른다.

한국에 범죄가 일어났다면 우리나라의 시스템과 문화와 국민성을 때문이고, 외국의 범죄 소식에는 ‘우리도 똑같다’, ‘우리나라는 나을 줄 아느냐?’, ‘여기는 더한 놈들이 널렸다’라고 생각한다.


황소개구리 개체수를 줄인 것은 두꺼비였다..

이런 경향은 심지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적용된다. 뉴트리아나 황소개구리같은 생태교란종이 창궐한다는 소식에는 ‘한국인들은 건강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싹 멸종시킬 거라는’ 예언이, 일본에 지진이 났는데 사람들이 질서있게 대응했다는 뉴스에는 ‘한국에 지진이 났으면 난장판이 되었을 거라는’ 예측이 당연한 듯 댓글에 올라오고 많은 추천을 받는다.

한국은 도대체 뭐 하나 긍정적인 구석이 없는 나라다.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고 사회는 안 썩은 데가 없고 사람들은 미개하고.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춥고 미세먼지에 방사능에 주위에는 나쁜 나라밖에 없는데 우리나라는 초라하고 미약하다.

한국인들은 한국인이어서 불행하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아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역시 이민만이 답일까?

이런 마음의 습관으로는 여기 살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656
  • 기사등록 2021-01-29 09:19:3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