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The Psychology Times=김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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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A’씨가 있다.
그에게는 하나의 습관이 있다. 바로, 무언가 새롭게 시작했을 때 그것을 제대로 끝맺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취미가 되었든 생계가 달린 직장이 되었든, 결과는 늘 같았다.
심지어는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조차 저 지독한 습관 하나 때문에 이미 수차례 갈등을 빚어 왔다.
늘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의욕에 가득 차 그게 무엇이든 금세 몰두하곤 한다.
그러나 마무리할 순간이 가까워 오면 갑자기 흥미를 잃고 다른 새로운 것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어떤 것에 매이는 것은 싫지만, 내키는 일은 많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관계를 대하는 모습에 그대로 적용되어 타인들에게 비친다.
바로 ‘회피형’이라는 모습으로.
회피형은 친밀한 관계를 기피한다. 회피형에게 친밀함이란, ‘상실의 고통’이자 ‘좌절에 대한 기억’이다. 회피형은 엄마의 사랑을 원하는, 유년 시절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기억이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좌절했던 경험을 되풀이하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하거나, 어떠한 기대도 가지지 않으려는 ‘습관’을 들인다.
회피형은 친밀한 관계를 바라고 기대할수록, 그것이 곧 상처로 고스란히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들은 의존할 대상을 주변에 두지 않음으로써, 사랑과 관심을 요구할 애착 대상이 없다는 상실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족과 거리를 둔다는 것은, 욕구가 거절당하고 그로부터 겪는 상실감에서 비롯되는 분노 때문에 상대와 갈등을 빚을 위험성 자체를 줄여준다. 즉, 회피형의 ‘거리 두기’란 최소한의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한 적응적 행위인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어떨까?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착각이었다면, 당황하게 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회피형은 이러한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순간을 몹시, 두려워한다. 만약 상대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귀찮아하거나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곧바로, 그 관계를 정리하려는 마음을 먹는다. 버려지거나, 그러한 느낌을 받기 전에 스스로 상대방을 먼저 버림으로써, 치욕을 느끼지 않으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회피형도 타인에게 친밀함을 느끼며 교감을 나누는 순간이 있다.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탐색 활동을 할 때가 그러한 순간인데, 이때 그들은 ‘서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친밀감과 신뢰감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관계를 위해 들이는 시간, 그리고 성의들을 즐겁다고 느끼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애착이란 그러한 감정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애착 관계의 친밀함과 다른 관계에서의 친밀함이란 같다고 말할 수 없다. 애착 관계란 유일무이한 것이며, 특별한 것이다. 회피형이 친밀감이라고 느끼는 감정들은 애착 관계에서의 유대감 같은 것이 아니라, 탐색 활동에서 비롯된 ‘공통 관심사에 대한 제휴’에 더 가깝다.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매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것은 실제로 회피형들이 품고 살아가는, 실재하는 생각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해 주면 당연히 기쁘고,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도 자신에게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게 될 것이고, 그 상대방은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은 회피형으로서는, 몹시 좋지 못한 일이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야만 지금껏 고집해 왔던 회피형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한 번, 한순간에 만족하거나 감사하고,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회피형으로서는 위험 부담이 크게만 느껴질 뿐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은데, 하물며 친절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괜히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만 받을까 봐 두려운 그 마음은, 차라리 일이 잘못되기를 바라게 된다.
회피형이 느끼는 거부감은 ‘사랑받지 못했다’는 피해 의식, 그리고 ‘주고 싶지 않은 분노’로부터 기인한 방어 기제이다. 이들의 거부감은 개인의 구체적 경험 속에서 제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이 사실을 아는지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거부감이라는 것은 삶을 매우 피폐하게 만든다.
누구나 ‘A’씨가 될 수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A’씨 같은 회피형이 아닐 수도 있지만, ‘A’씨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당신이 후자에 속한다면. 즉, 적어도 당신이 스스로가 회피형임을 자각한 상태이며, 당신의 정신과 내면을 보다 단단하고 긍정적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어지는 글이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회피형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은 몹시 간단하다.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회피형은 애착을 원치 않는 자들이 아니다. 그저 그들의 경험 속 내재되어 있는 좌절과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주고받는 것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가 스스로의 무의식 속에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애착 욕구를 인정한다는 것은 즉, 희로애락의 감정 또한 여전히 내면에 살아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생동감 있는 삶을 살게 한다.
만약 당신이 회피형인데, 요즘 또다시 일이 어긋나기를 바라는, 어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면, 분명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즉시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잘 풀릴 것이리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최대한 생각을 수정해 보도록 하자. 그 정도 긍정적인 결과는 기대해도 괜찮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아직 닥치지 않은 나쁜 미래는 앞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연습을 조금씩 해 보자. 아마 당신의 마음도, 정신도 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회피형이 타인을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결국, 본인 스스로를 위한 일이다. 스스로를 봉인시키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방치한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더는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고 수용하라.
그래야만 그토록 바라던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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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보광. (2018). 오해하지 않는 연습, 오해받지 않을 권리. (주)웨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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